先賢들의 멋이 깃든 亭子이야기 50花石亭. 승지(勝地)를 택(澤)하여 선대(先代)의 유업(遺業)을 계승했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을 조망할 수 있는 언덕에 위치한 화석정(花石亭)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누각이다. 고려 말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유지(遺址)라고 전하고 있다. 세종 25년(1443)에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5대조부인 이명신(李明晨)이 건립하였다. 그 후 율곡이 이곳에서 학문을 논하였다. 현종 14년(1673)에 율곡의 종증손(從曾孫)인 이후지(李厚址)와 이후방(李厚芳)이 중건하였다. 6.25전란으로 소실되었는데, 1966년 파주 유림들의 성금으로 복원했다.
파주(坡州)는 고구려 파해평사현(坡害平史縣)으로 신라 경덕왕 때 파평(坡平)이라 고쳤다. 고려 현종 9년에 장단현(長湍縣)에 예속시켰고, 문종(文宗) 17년에는 개성부(開城府)에 예속시켰다가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 태조 7년에 파평과 서원군(瑞原郡)을 합쳐 원평군(原平郡)으로 만들었다. 태종 때 도호부(都護府)로 승격 후, 세조 6년에 왕비의 고장으로 파주목(坡州牧)으로 승격되었다. 고을의 별칭으로 액봉(額蓬), 파평(坡平), 영평(鈴平), 봉성(峯城), 원평(原平) 이라 불렀다. 고을 동쪽은 양주(楊洲), 서쪽은 한강(漢江)을 경계로 김포(金浦)와 임진강(臨津江)을 경계로 북한의 개풍(開豊), 남쪽은 고양(高陽), 북쪽은 연천(漣川)과 인접해 있다.
파주읍 파주리에 파주향교(坡州鄕校), 금촌동 금릉리에 교하향교(交河鄕校), 적성면 구읍리에 적성향교(積城鄕校)가 있다. 파주향교 북쪽 20여리 유서 깊은 정자가 있으니 화석정(花石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화석정(花石亭)은 고을 북쪽 15리 지점에 있는데, 지돈령(知敦寧) 이명신(李明晨)이 살던 곳이다’라고 했다. 이명신은 벼슬이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에 오른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율곡(栗谷) 이이(李珥)의 5대조부이다.
양원(楊原) 이숙함(李淑瑊)의 기문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나의 문생(門生)으로서 전일 홍주(洪州) 통판(通判)이였던 덕수(德水) 이의석(李宜碩)이 그의 아우이자 나의 동료인 의무(宜茂) 씨를 보내 와서 말하기를, ‘파주 관아 북쪽 10리쯤에 율곡(栗谷)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나의 조부 강평공(康平公: 李明晨)의 옛 별장이며, 별장 북쪽 봉우리에다가 정자를 지었다. 기이한 꽃과 이상한 풀, 진기한 소나무와 괴이한 돌을 많이 심어 놓고 관상하였다. 그런데 세월이 오래되어 퇴폐(頹廢)해 버려 옛터만 남았다. 의석은 오직 조부의 기업이 황폐하게 될까 두려워하여 옛터에다가 중건하였다. 정자는 장단 쪽을 향했는데, 석벽이 병풍처럼 되었고, 임진강 상류를 임하여 지세가 매우 험하다. 난간에 기대서 바라보면, 한양 삼각산과 송도(松都) 오관산(五冠山)이 저 하늘 아득한 중에 머리카락만큼 드러나니, 이것이 정자의 경치이다. 그러므로 자네가 정자 이름을 짓고 기문을 써 아름답게 해주기를 바라네’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찬황공(贊皇公) 이덕유(李德裕: 당나라의 재상)의 평천장기(平泉莊記)에서 ‘화석(花石)’을 따서 이름 지었다.”
이의무(李宜茂)는 “나의 중백씨(仲伯氏) 홍주통판(洪州通判)이었던 의석(宜碩)이 벼슬을 그만둔 그해에 파주 율곡 별장에다가 정자를 지었는데, 실상 우리 왕부(王父) 강평공[李明晨]의 옛터이다. 양원공(楊原公) 이숙함(李淑瑊)이 화석(花石)으로써 이름을 짓고, 아울러 기문하여 아름답게 하였다. 아, 꽃과 돌은 무심한 물건이다. 그러나 선조의 수택이 남아 있다는 것으로 나를 감개하게 하므로 이에 글을 지어 이를 자랑함이 어찌 무심하리요. 이것으로 인해서 우리 중백씨의 뜻을 또한 알 것이다”라는 부(賦)를 남겼다.
당(唐) 나라 때의 재상인 이덕유(李德裕)은 하남성 낙양현에 평천장(平泉莊)을 지어 놓고 자손들에게 훈계하기를 ‘이것을 파는 자는 나의 자손이 아니며, 꽃 하나 돌 하나라도 남에게 주는 자도 훌륭한 자손이 아니다’라고 하였으나, 훗날 그곳의 많은 꽃과 돌이 유력한 사람들의 손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는 “화석정 위의 구름은 천 년의 옛 구름이요[花石亭上雲千秋] 화석정 아래 강물은 절로 흘러만 가네[花石亭下江自流] 화석정의 주인은 적선(謫仙: 李白)의 후예이기에[花石主人謫仙後] 풍류와 시주가 기구(箕裘: 가업을 잘 계승함) 했도다[風流詩酒能箕裘] 주인이 어느 해에 이곳에 살 터 잡았나[主人何年此卜築] 어쩌면 청전(靑氈: 푸른 담요, 世傳之業)의 옛 별장이 아니었는지[無奈靑氈舊別業] 여기는 당나라 문신인 이원(李愿)이 살던 반곡(盤谷: 太行山 남쪽 지명)은 아니요[不是李愿盤之中] 정히 바로 이덕유(李德裕)의 별장인 평천장(平泉莊) 이로다[定是德裕平泉宅] <後略>”라고 노래했다.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은 화석정도(花石亭圖)에 이의석(李宜碩)을 위해 부(賦)를 남겼다. “이후(李侯: 李宜碩)는 참으로 자손으로서 어질기도 하네[李侯眞箇子孫賢] 선조의 당이 지금도 황페하지 않게 보존했네[堂構如今不墜先] 어느 물 어느 둔덕 소윤(少尹)이 슬퍼했고[某水某丘悲少尹] 꽃 하나 돌 하나는 평천장(平泉莊)보다 낫구나[一花一石勝平泉] 현주(玄洲) 바람 비는 서해에서 오고[玄洲風雨來西海] 적현의 멧부리는 반공에 솟았도다[赤縣峯巒落半天] 강평공의 원대한 자손 위한 계책을 알려면[欲識康平貽厥遠] 마을 가득한 풍경이 바로 세전(世傳)이라네[滿村煙月是靑氈]”
이의석(李宜碩)의 증손인 율곡이 8세 때 지은 시가 정자에 현액 되어 있다. “숲 속 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林亭秋已晩] 시인의 생각 끝없이 일어나네[騒客意無窮] 멀리 보이는 저 물빛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遠水連天碧] 서리 맞은 단풍은 햇볕 받아 붉구나[霜楓向日紅]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 내고[山吐孤輪月] 강은 만 리 바람을 머금었네[江含萬里風]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塞鴻何處去] 저녁 구름 속으로 소리 사라지네[聲斷暮雲中]” 율곡의 제자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은 율곡의 행장에서 “8세에 스승에게 글을 배워 학업이 날로 진취하였다. 일찍이 화석정(花石亭)에 올라가 시를 지었는데, 그 격조(格調)가 완전하게 이루어져 아무리 시율(詩律)에 능숙한 사람이라도 따를 수 없었다”라고 했다.
율곡의 지기(知己)인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화석정을 지나면서 “마주선 산 형세 본래 한 줄기이고[山形背立本同根] 갈라진 강물도 한 근원이네[江水分流亦一源] 화석 옛 정자에 사람 보이지 않으니[花石古亭人不見] 석양에 돌아가며 거듭 넋이 사라지네[夕陽歸去重消魂]”라고 읊어 율곡을 그리워했다.
선조 15년(1582년)에 명나라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는 조서를 반포하기 위하여 한림편수(翰林編修) 황홍헌(黃弘憲)과 공과급사중(工科給事中) 왕경민(王敬民)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다. 이에 율곡이 원접사(遠接使)를 맡아 이들을 화석정에서 맞이하였는데, 황홍헌이 크게 칭찬하며 시를 지었다. “녹야당(綠野堂:당나라 재산 裵度)의 별장)이 성곽을 등져 그윽한데[綠野堂開背郭幽] 흰 구름 방초가 바로 단구(丹丘)일세[白雲芳草卽丹丘] 산 꽃빛은 소나무와 삼나무의 푸르름에 비치고[山花色映松杉翠] 석벽의 푸르름은 담쟁이의 가을을 머금었네[石壁靑含薜茘秋] 선대의 유업이라 긍구(肯構: 자식이 어버이의 뜻을 계승한)에 힘쓰겠지만[世業自應勤肯構] 태평한 시대에 어찌 토구(菟裘: 노나라 隱公이 말년에 은거한 곳)를 생각하랴[淸時豈合念菟裘] 찬황의 공렬이 당사(唐史)에 나타났으니[皇勳烈標唐史] 부디 번선(藩宣: 제후국의 임금)을 도와 원대한 계책을 이으시길[勉佐藩宣紹遠猷]”
이에 율곡은 화답했다. “선인의 유업 황량하고 들길 으슥한데[先業荒涼野逕幽] 강산은 옛날같이 숲과 언덕을 끼고 있네[江山依舊擁林丘] 섬돌에 꽃 지니 겨우 종류 분간할 만하고[花殘草砌纔分種] 흙에 삭은 바위 연대도 모른다오[土蝕雲根不記秋] 승지(勝地)를 잡은 게 어찌 숨어 살자 함이며[占勝豈緣甘隱遯] 중수를 한 것도 기구(箕裘: 선대의 유업을 계승함)를 지키고자는 것일 뿐[重新祇爲守箕裘] 경거(瓊琚: 사신)이 벽(璧)을 비추며 깨우침을 주니[瓊琚照壁仍垂警] 재주없어 선대의 유훈을 못 빛낼까 부끄럽네[自愧疏才未煥猷]”
문곡(文谷) 김수항(金壽恒)은 화석정에 올라 주자가 염계(濂溪) 주돈이(周惇頤)의 인품을 기린 고사에 빗대어 율곡을 생각하며 시를 지어 율곡의 종증손(從曾孫)인 이후지(李厚址)에게 주었다. “유명한 정원으로 누가 다시 평천장을 꼽는가[名園誰復數平泉] 이곳은 사문에서 만고에 전하는데[自有斯文萬古傳] 당시의 참다운 기상 바라보자니[看取當時眞氣象] 강에 가득 바람과 달 넓어서 끝이 없도다[滿江風月浩無邊]”
박광영 / 성균관 의례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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