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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如履薄氷’ 엷은 얼음을 밟는 듯 매사에 조심해라

편집부
2018.05.27·4분 읽기·조회 64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증자(曾子)가 병(病)이 위중하자, 제자(弟子)들을 불러 말씀하였다. “(이불을 걷고) 나의 발과 손을 보아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전전(戰戰)하고 긍긍(兢兢)하여, 깊은 못에 임한 듯이 하고, 엷은 얼음을 밟는 듯이 하라.’하였으니, 이제서야 나는 (이 몸을 훼상시킬까 하는 근심에서) 면한 것을 알겠구나, 소자(小子)들아!”(曾子有疾하사 召門弟子曰 啓予足하며 啓予手하라 詩云 戰戰兢兢하여 如臨深淵하며 如履薄氷이라하니 而今而後에야 吾知免夫로라 小子아.「태백」3)

 

‘리(履)’는 ‘신발’ 또는 ‘밟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신을 신고 밟다’라는 뜻이 전이되면서 훗날 ‘경험하다, 겪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흔히 ‘이력서(履歷書)’라고 말할 때 ‘이(履)’가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곧 ‘그 사람이 걸어온 경력’을 의미한다.

 

그런데 「태백」편에 보이는 이 ‘여리박빙’ 성어는 좀 더 원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평소 효자로 이름난 ‘증자’가 병이 깊어졌을 때, 제자들을 불러 자신의 손과 발을 보게끔 하고, 자신이 생을 마감하는 지금까지 이렇게 신체를 온전히 보존할 수 있었음을 알려주며, ‘효’ 실천의 어려움을 제자들에게 자각시켜 주는 대목이다.

 

여기에서 증자는 『시경』의 “벌벌 떨며 어찌할 줄 모르듯(戰戰兢兢), 오들오들 깊은 연못에 임하듯(如臨深淵), 엷은 얼음 위를 걸어가듯(如履薄氷)” 구문을 인용하며, 자신이 부모로부터 받은 신체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지금까지 이렇게 조신(操身)하며 살아왔음을 알려준다.

 

『효경』의 “신체발부(身體髮膚) 수지부모(受之父母) 불감훼상(不敢毁傷) 효지시야(孝之是也)”를 몸소 실천한 효자 중의 상효자임을 자임하는 장면이다.

 

이와 같이 ‘여리박빙’은 자신을 낳아준 부모님께 최대의 효를 실천하기 위한 삶의 한 방식이었으며,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부모님께 누(累)를 끼치지 않도록 매사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모습을 통칭하는 표현으로부터 출발한다.

 

『논어』 경문 속에 면면히 흐르는 주제어는 역시 ‘배움(學)’이라 할 수 있겠으나, 사람이 아무리 배워도 ‘인간됨’의 근원은 역시 ‘효도(孝)’에 바탕을 둔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만약 인간됨을 ‘인성(人性)’이라 치환할 수 있다면, ‘인성’의 시작은 바로 ‘효(孝)’가 될 것이다.

 

자신을 삼가 낮추고, 혼탁한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존재의 이유를 ‘여리박빙’하며 살아가는 ‘효’의 진솔한 모습으로부터 접근하려는 옛 선현의 자세야말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남겨주는 메시지일 것이다.

 

한편, 유가(儒家)에서의 ‘여리박빙’과 관련하여 도가(道家)에서도 이러한 유사한 의미를 지닌 말이 있다. 주지하시다시피 ‘다산 정약용’의 ‘당호’가 ‘여유당(與猶堂)’이라는 사실은 매우 유명하다.

 

‘당호’는 그 사람이 기거했던 집(堂宇)의 이름을 붙여 쓰이는 호(號)라 할 수 있는데, 조선시대 왕족들은 ‘궁호’를 사용하였고, 웬만한 선비들은 ‘당호’를 거의 모두 가지고 있었다. ‘혜경궁 홍씨’, ‘운현궁 흥선대원군’, ‘신사임당 신씨’ 등이 유명한 궁호와 당호로 널리 알려져 있다.

 

정약용의 당호인 ‘여유당’은 본래 노자(老子) 『도덕경』의 한 구절에서 취한 것으로, “여(與)함이여, 겨울 냇물을 건너듯 하고, 유(猶)함이여, 너의 이웃과 사방을 두려워하듯 하라.”는 의미를 가진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즉, 세상을 살아감에 항상 조심조심 삼가며 살아가야 함을 뜻한다. 비록 『도덕경』에서 취한 당호라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선비의 자세는 유가나 도가나 마찬가지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