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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任重道遠’ 책임은 무겁고 가야 할 길은 멀다

김용재
2018.07.03·3분 읽기·조회 16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증자가 말씀하였다. “선비는 뜻이 넓고 의연하고 안 된다. 책임은 무겁고 가야할 길은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써 자신의 책임을 삼으니 이 또한 막중하지 않은가?” 죽은 뒤에야 (비로소) 끝나는 것이니 멀지 않은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니 任重而道遠이니라 仁以爲己任이니 不亦重乎아 死而後已니 不亦遠乎아. 「泰伯」7)

 

‘선비’라는 한자 ‘사(士)’가 『설문해자』에는 다음과 같이 풀이되어 있다. “하나를 알면 열을 알게 되는 사람이며, ‘一’과 ‘十’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이다.” 옛날 고대 중국에서 ‘선비’는 위정자나 관료와 같은 존재이며, 지금으로 말하자면 정치인이나 행정공무원에 해당하는 직급에 해당된다. 이들에게는 일정한 녹봉과 의복이 주어지며, 그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 또한 막중하였다. 사실 ‘임중도원(任重道遠)’은 증자가 독백처럼 내뱉는 말이었지만, 그 내면에 담긴 뜻은 사뭇 중후함을 느끼게 만든다.

 

증자의 말에 의하면 ‘선비’란 존재는 모름지기 그 품은 뜻이 드넓고 굳세어야 하며, 의연한 자세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선비에게 주어진 책임은 막중한데 가야할 길은 아득하니, 자신의 어깨에 메어진 무한 책임에 대하여, 늘 각성하며 살아가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책임의식은 죽은 후에나 비로소 해방될 수 있는 것이니, 살아 있는 동안 백성의 피와 같은 세금을 녹봉으로 받는 관료라면 언제나 이를 명심하라는 잠언(箴言)에 가까운 말이다.

 

이 『논어』의 경문에서 ‘홍의(弘毅)’는 참으로 멋진 단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 건국신화에도 나타나지만 ‘홍(弘)’은 ‘홍익인간(弘益人間: 널리 인간세계를 이롭게 한다)’에서 바로 그 의미와 동일하다. 자전적 의미로는 ‘넓다’에 불과해 보이지만, 여기에서 ‘홍’은 모든 것을 베풀고 또 모든 아픔을 다 받아들일 수 있는 포용과 관용을 의미하고 있다. 한편 ‘의(毅)’는 ‘굳세다’라는 자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품은 뜻이 의연함’을 상징하는 글자다. 즉 선비는 모든 것을 베풀고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의 자세와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만, 비로소 선비로서의 존재가치가 세워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막중하고 짐이 되었으면 죽은 후에나 비로소 이러한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고 하였을지, 가히 짐작이 간다.

 

주자는 이 책임의식을 단순하게 각성하고 있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한 숨결이라도 아직 끊어지지 않고 남아있는 순간까지 행동으로 옮기는 데에 있어서, 절대로 나태함을 용납할 수 없다고 부연하였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모 검찰총장은 “맡은 책임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의 이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인용하며, ‘깨끗한 선거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다해달라’고 관료들에게 당부하는 인터뷰가 공지된 바 있다. 그렇다. 생(生)을 마감하는 마지막 한 순간까지 ‘인(仁)’이라는 마음의 짐을 벗지 않고 삶을 영위하는 참다운 관료에게서 우리는 그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