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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56가장 즐거울 때 가장 조심해야 한다

편집부
2014.09.12·4분 읽기·조회 15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즐거움에 어두워졌으나 변함이 있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즐거움에 어두워 위에 있으니 어떻게 오래갈 수 있겠는가? [豫卦 上六] 

 

 

 

한나라 경제의 황후가 된 왕지는 그 이전에 이미 다른 사람하고 혼인하여 딸을 하나 둔 유부녀였다. 왕지뿐만 아니라 그 모친 장아도 두 번 시집을 간 여인이다. 장아의 할아버지 장도는 항우에 의해서 연왕으로 봉해졌지만 고조에게 항복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고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어렵게 살아남은 장아가 왕중에게 시집을 가서 아들 왕신과 두 딸(왕지와 왕아후)을 낳았지만 왕중이 일찍 죽었고 다시 시집을 가서 전분과 전승을 낳았던 것이다. 왕지가 황태후가 되었을 때 장아와 그의 아들 셋도 모두 제후로 봉해져서 부귀를 누린다.

 

장아가 두 딸의 장래에 대해서 점을 쳤는데 “비할 수 없이 귀하게 된다”는 점괘가 나왔다. 그런데 이미 왕지를 김왕손에게 시집보내서 딸을 낳은 뒤였다. 그래서 부랴부랴 강제로 이혼을 시키고 왕지를 태자궁에 보내서 태자와 결합하도록 유도하였다. 부귀에 대한 욕망으로 인륜을 무시한 것이다. 당시 태자는 할머니인 박태후가 친정집의 여자를 들여서 태자비로 삼았지만 후사를 낳지 못한 상태였다. 왕지는 딸을 낳은 아줌마임에도 뛰어난 미모가 있었는지 태자의 사랑을 받아서 세 딸과 아들을 낳았다. 뿐만 아니라 아들을 임신했을 때 “해가 품안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다”고 태자에게 말하는 지략을 발휘하기도 했다. 경제가 황제로 즉위했을 때 왕지는 아직 아들(훗날의 무제)을 임신한 상태인지라 율희 소생인 맏아들을 태자로 삼았다.

 

율희의 아들이 황제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경제의 누나가 자신의 딸을 태자비로 맞이하면 왕지를 내치고 황후가 되도록 돕겠다고 제안했다. 율희는 왕지가 궁중에 들어오기 전에 딸을 낳았고 더구나 그 모친도 두 번 시집가서 아버지가 다른 자식을 낳은 것이 모전여전의 큰 흠이므로 자신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점에 있어서 경제와 왕지는 서로 동병상련을 느끼고 있었다. 지난 호에서 언급했듯이 경제의 부황인 문제 역시 고조가 남의 아내를 빼앗아서 얻은 자식이었던 것이다. 태자의 모후로 당연히 황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 율희는 공주가 재물을 좋아하고 행실이 좋지 않다고 하면서 거절을 했다. 격분한 공주가 왕지와 결탁해서 경제에게 율희를 비방하고 왕지의 덕을 칭송하였다. 또 왕지의 동생 아후도 궁중에 들어와서 경제와의 사이에 네 아들을 낳는 등 한 울타리가 되었고, 무제를 임신했을 때 말한 꿈 이야기도 생생한지라 결국 율희 소생인 태자를 폐하고 왕지의 소생을 태자로 삼게 되었다. 이 사람이 바로 16세에 황제가 된 무제이다. 율희가 자신의 아들이 태자가 된 위세만 믿고 주변사람들과의 화합을 소홀히 한 결과 자신도 죽고 아들도 죽게 되었으며 욕망의 화신 무제를 임금으로 만듦으로써 중국이 피폐해진 것은 물론이고 주변국도 모두 화를 입게 만든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예괘 상효처럼 자신의 즐거움에만 취해서 주변을 잘 살피지 않으면 위태하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