克己復禮와 文廟儀禮(2)
<span style="color: rgb(105, 105, 105);">문묘에서의 절하는 법(跪坐拜說)</span>

절을 하는 방법 중에는 크게 국가와 가정에서의 배법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가정에서는 소위 가가례(家家禮)라 치부하여 차치하고서라도 먼저 국가에서의 배법을 살펴보고자 한다. 국가에서는 종묘의 국궁사배(鞠躬四拜)와 문묘의 궤좌사배(跪坐四拜)가 있는데 국궁사배는 왕과 왕후에게 행하는 군국(君國)에 대한 절이고, 궤좌사배는 선성과 선현의 스승에게 행하는 절이다. 따라서 성균관과 향교에서는 후자인 궤좌사배를 전거로 하여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절을 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교육을 받거나 일부 명문가를 제외하고는 대체로 어른들로부터의 배법을 어깨너머로 배워서 흉내 내는 수준이 고작일 것이다. 필자 역시 그러하였기에 공감하는 바가 매우 크다. 그러나 십여 년 전부터 성균관을 출입하면서 익힌 여러 예법에 문제가 많음을 인식하고 거듭하여 여러 방면으로 공부한 결과 주례(周禮)의 춘관구배설(春官九拜說)과 주자의 궤좌배설(跪坐拜說)과 사계 선생의 사림광기설(事林廣記說)을 접하게 되어 그 예학적인 근원을 밝혀 행할 수가 있었다.
먼저 『周禮』의 구배설에 계수(稽首), 돈수(頓首), 공수(空首), 숙배(肅拜)의 네 종류는 바른 절이라 하였고 진동(振動), 흉배(凶拜), 포배(褒拜), 길배(吉拜), 기배(奇拜)의 다섯 종류는 부속된 절이라 하였는데 바른 절인 정배는 모두 두 무릎을 꿇어앉아서 행하는 절인데 손의 모양에 따라 구분하는 예배이다. 그 중에서 공수한 손을 땅에 짚고 난 후 공수를 풀어서 벌려 짚은 후 이마를 땅에 대고 잠시 머물렀다가 일어나는 계수배가 가장 중한데 신하가 임금에게 하는 절이다. 다음으로 공수한 손을 풀지 않은 채로 이마를 손등에 대었다가 바로 일어나는 절인 돈수배가 있는데 서로 대등한 사이에 행하는 절이다. 또 공수한 손을 땅에 짚었다가 이마를 손등에 대지 않고 곧바로 일어나는 공수배가 그 다음인데 임금이 신하에게 답하는 절이다. 마지막으로 숙배가 가장 가벼운 절이라고 하였는바, 이는 군중과 부인의 절이다.
주자의 궤좌배설은 주자께서 “옛사람들의 좌는 두 무릎을 꿇고 땅에 댄 다음 그 발바닥을 뒤집고 그 위에 앉으니 바로 지금의 호궤(胡跪)와 같다. 계수는 공수하여 땅에 짚은 손을 벌려서 머리를 지면에 대는 것이니 또한 오늘날의 예배(禮拜)와 같은 것이다. 모두 무릎을 꿇고 하기 때문에 더욱 공손함이 극진하게 된다” 하였다. 면우 곽종석 선생이 주자의 말을 인용하면서 “궤와 좌는 조금 다르다. 두 무릎을 지면에 붙이고 허리와 넓적다리를 곧게 펴서 자세를 세우는 것을 궤라 하며 두 무릎을 지면에 붙이고 궁둥이를 바짝 붙여서 조금 편안하게 하는 것을 좌라 한다. 궤와 좌 두 가지는 서로 닮았으나 다만 하나는 세우고 하나는 편안하게 하는 것이 같지 않을 뿐이다” 하였으니 이른바 주자의 궤좌배설로 지금의 문묘배법이 바로 이것이다. 또 우복 정경세는 사가의 절로 “무릇 절이란 한 번 읍하고 조금 물러난 후 먼저 왼발을 꿇고 다음에 오른 발을 꿇어 머리를 숙여 땅에 이르면 일어난다. 먼저 오른발을 일으키고 두 손을 가지런히 오른쪽 무릎에 놓고 다음 왼발을 일으킨다. 다시 한 번 읍한 후에 절한다”고 하였다.
석전대제 이수자 이대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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