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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學如不及’ 배움은 마치 따라가지 못하듯 해라

김용재
2018.08.29·3분 읽기·조회 34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움은 따라 가지 못할 듯이 하면서도 행여 때를 잃을까 두려워하여야 한다.”(子曰 學如不及이요 猶恐失之니라. 「泰伯」 17)

‘학여불급’의 본뜻은 『논어』의 전체적인 경문에 의하면 “배움이란 마치 죽으라고 쫓아 따라가도 잡을 수 없는 고원한 경지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다음 경문 ‘猶恐失之’는 재미있게도 두 가지 의미로 풀이가 가능하다. 첫 번째 해석은 이렇다. “배움이 행여 때를 잃을까 두렵다”는 것이다. 즉 배움은 아무리 쫓아가도 따라잡지 못하는 경지인데, 그나마 배울 수 있는 기회(때)마저 잃어버린다면 어찌 하겠느냐는 반어적 표현이다. 널리 알려진 ‘권학시(勸學詩)’ 한 편을 잠깐 소개해볼까 한다.

“소년은 늙기 쉽고 학문은 이루기가 어려우니(少年易老學難成), 일촌의 광음(시간)이라도 가벼이 보내지 말라(一寸光陰不可輕). 연못가에 파릇파릇한 봄풀은 꿈에서 아직 깨지도 않았는데(未覺池塘春草夢), 섬돌 앞 정원의 오동나무 잎이 이미 가을 소리를 내는구나(階前梧葉已秋聲).” 인생은 유한하며 학문의 깊이는 요원하다. 그래서 공자는 배움에 때가 있다고 늘상 말씀하셨나 보다. 그래서 차마 미치지도 못하며, 따라갈 수조차 없는 학문의 경지인데 그나마 배울 수 있는 때마저 놓친다면 그 처량한 인간을 어찌할 것인지를 염려하는 뉘앙스로도 감상이 가능하다.

두 번째 풀이는 다음과 같다. ‘학문’이란 부단(不斷)한 배움을 통하여 가까스로 접근하고 또 접근해야만 하는데(學如不及), 오히려 그나마 어제까지 알고 있었던 것마저 머릿속에서 사라져 버릴까봐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猶恐失之) 지식의 고원함과 인간이 가진 역량의 한계를 한탄하며 걱정하는 어기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무엇보다도 ‘배움’은 나 자신의 인간됨을 한 차원 높여가는 노력의 과정이며, 나 자신의 역량을 최대한 넓혀갈 수 있는 지식확충의 길이다. 배움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만으로 생각한다면, 목적을 이룬 그 순간에 배움은 끝나버리고 말기 때문이다.

역시 무엇인가를 배워나간다는 것은 ‘덕으로 사람을 감화시키는 薰陶의 향기’를 줄곧 냄새 맡고픈 본능의 경지로 승화시켜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