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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우리지역 문화재를 소개합니다〕정치에 초연했던 왕자, 익안대군 영당 원훈각

이덕래 기자
2014.10.15·3분 읽기·조회 41


원훈각 전경


충남 논산시 연산면 화악리 316번지에 개국·정사 1등 공신에 책록된 익안대군 이방의의 영정을 모신 영당인 원훈각이 있다. 이곳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29호로 지정된 영정이 있다.

익안대군 이방의(李芳毅;1360~1404)는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셋째 아들로 정종대왕의 아우며 태종대왕의 형이다. 유훈으로 충효전가(忠孝傳家)가 전해지고 있다. 고려 공양왕 때 판밀직사사, 태조 1년에 익안군, 7년에 익안공에 봉해졌다.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해서 사직을 바로 세운 공으로 의안군 이화 등과 함께 정사공신 1등에 책록되었다. 또 조선건국에 공이 인정되어 정안군 등과 개국공신 1등에 추록되었다.

이방의는 이성계의 아들 가운데 가장 야심이 적어 겸양하는 풍도가 있어 아우 이방간과 이방원의 왕위 계승 싸움에서 중립을 지켰다. 태종이 즉위하자 익안대군에 봉해졌다. 그 뒤 병을 얻어 두문불출하다 태종 4년(1404)에 고종명을 맞이했고 안양의 시호를 받았다.

태종 18년에 시호가 마한공정공으로 증봉되었다가 세종 3년에 다시 안양으로 환원되었고 세종 19년에 마한안양공으로 추증되었다. 세종 3년 12월17일자 내린 제문에 의하면 “나라를 세우고 종사를 정했으니 실로 세상에 드문 원훈(元勳)이요, 덕을 높이고 공에 보답하는 것은 곧 나라의 영전이라 했다. 그래서 영당의 이름을 원훈각(元勳閣)이라 했다” 고 한다. 원훈각이 있는 연산 화학리는 익안대군 후손들의 집성촌이 되었다. 고종 2년에 영종정경(領宗正卿)에 봉해졌다.

배위는 삼한국대부인 정경옹주 철원최씨다. 아들은 대광보국 숭록대부 익평부원군 석근(石根)으로 세종조에서 청백리로 선록되었고, 서자에 영가정(永可正) 승(昇)이 있다.

대군의 증손 옥계도정 이현동(李賢童)은 수양대군이 조카인 단종을 폐하고 왕위에 오르자 이를 한탄하면서 “귀로는 차마 들을 수 없고,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고, 입으로는 감히 말할 수가 없도다!” 하며 스스로 농맹아란 호를 사용하였으며, 자식들에게 관직에 나아가지 말기를 당부하였다고 한다. 옥계도정공 재실 승무재(충남 논산시 벌곡면 조령리 소재)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96호다. 옥계도정 이현동은 높은 충절로 인해 논산 충곡서원과 조정서원에 배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