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字論語> ‘博文約禮’ ‘문’으로 넓혀 주시고 ‘예’로써 집약시켜 주시다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안연이 크게 탄식하며 말하였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우러러볼수록 더욱 높고, 뚫을수록 더욱 견고하며, 바라보니 앞에 계신가 했는데, 어느덧 홀연히 뒤에 계시는구나! 선생님께서 차근차근히 사람을 잘 이끄시어 문(文)으로써 나의 지식을 넓혀주시고, 예(禮)로써 나의 행동을 요약해 주셨다. (공부를) 그만두고자 해도 그만둘 수 없어 이미 나의 재주를 다하는데, 선생님의 가르침은 어느새 내 앞에 우뚝 서 계시는구나! 선생님을 따르고자 하나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 지를 모르겠구나!”(顔淵이 喟然歎曰 仰之彌高하며 鑽之彌堅하며 瞻之在前이러니 忽焉在後로다 夫子循循然善誘人하사 博我以文하시고 約我以禮하시니라 欲罷不能하여 旣竭吾才하니 如有所立卓爾라 雖欲從之나 末由也已로다. 「子罕」 10)
‘박문약례’는 사실 『논어』에 2회 출현하는 유명한 어록이다. 「옹야」편과 「자한」편에서 “博我以文, 約我以禮”로 쓰여 있으며, 이를 네 글자의 성어로 압축하여 ‘박문약례’라 부르게 되었다. 이 경문의 본지는 공문의 뛰어난 제가 ‘안연’이 스승 공자의 훈도(薰陶)를 회상하며 감히 스승의 경지를 넘나들 수 없음을 경탄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즉 “선생님께서 나를 문으로써 넓은 경지를 가르쳐 주시고, 예로써 핵심 사상을 집약시켜 주셨도다”라는 것이다.
따라서 ‘박문약례’는 공자의 교육방법 가운데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성어이기도 하다. 사람을 가르치는 데에는 구체적인 방법과 순서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자집주에서는 이 경문에 다음과 같이 주(注)를 붙여 부연(敷衍)한다. “문(文)은 ‘치지’와 ‘격물’의 단계이고, ‘예(禮)’는 ‘극기’와 ‘복례’의 단계이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주석도 하나의 주석이다. 그러나 스승 공자가 이렇게까지 ‘격물치지’로부터 ‘극기복례’에 이르는 프로세스를 강조하였을지 의문이다. ‘박문약례’는 제자들에게 “글을 널리 배우고 예로써 그 배운 것을 요약한다면 도에 어긋나지 않을 것임”을 단정하는 실천중심의 철학이 깃든 것으로 인정해도 족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지식은 넓을수록 좋지만, 그것이 단지 지식으로만 그치고, 실천과 무관한 것으로 전락하지 않기를 경계한 말’이라 풀이함이 가장 적절하다는 이야기다. 공자는 늘 제자들에게 넓은 지식의 추구와 예의에 맞는 행동을 강조하였기 때문이다. 공자는 ‘이론’과 ‘실천’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는 ‘중용’의 가르침을 시시때때로 강설한다.
한편 이 문장을 지금의 현대적 감각에 맞추어 재해석해 본다면 ‘문’을 ‘정보(information)’에 비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널리 정보를 수집하고 배운다’는 의미가 된다. 그러나 그러한 지식정보도 가치기준이 삽입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정보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예(禮)’는 절제와 절용할 수 있는 가치기준이며 사회적 규약과 규범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21세기 지식정보의 홍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공자의 ‘박문(博文)’이라는 가르침은 그야말로 풍부한 정보를 널리 획득하되, 실제 가치있는 것만을 취사선택해야 함을 직시해주고 있다. 그러나 태산처럼 높고 사해와 같은 넓은 지식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정리하거나 요약하지 못한다면 실재에 응용할 만한 무용(無用)의 가치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공자의 ‘박문약례’는 “가르침을 업으로 삼는 교육자에겐 교육하는 방법을 남겨주셨고, 배우는 학습자에겐 지식을 축적하고 경영하는 방법을 유산으로 남겨주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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