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 대성전의 儒學者 차인들 ① - 신라시대 설총편
설총
신라 경덕왕(景德王) 시대의 유학자인 빙월당 설총(氷月堂 薛聰)은 무열왕의 딸인 요석공주와 ‘무애가’를 지어 당시 귀족의 전유물이던 불교를 민간인들도 알기 쉽도록 민중불교로 완성시킨 원효대사와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설총의 아버지인 원효에 대한 차의 전설이 전해온다. 원효대사와 사포스님이 차를 달이던 원효방(元曉房)터 샘물의 설화는 고려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전집』에 전해오는데, 원효방은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다. 원효방은 사포성인이 옛날 머물던 곳이 있었는데, 원효가 와서 살자 사포가 바위 틈에서 솟아나는 물을 이용해 늘 차를 달였다 전설이다.
또한 『삼국유사』에 의하면 설총이 살던 경덕왕 때는 차를 마시는 다도가 나라의 국사를 뽑는 도구로도 활용될 정도로 차가 성행되었던 시기였다. 경덕왕은 3월 삼짇날(3일) 신하들과 귀정문(歸正門) 누각 위에 나가서 경주 남산의 삼화령의 미륵세존에게 차를 올리고 내려오는 충담사에게 차를 청하여 맛보고, 안민가를 짓게 한 후 왕사(王師)로 봉하고자 하였으나 거절하는 내용에서 차는 유교식 제의례나 불교의 재, 또는 살아계신 왕에게 진상하는 의례용 음료로 활용되었다.
설총은 중국의 훈고학을 익히고 당대의 통일된 유학(儒學)경전을 우리말로 해석하면서, 한자에 훈고학적인 주석을 한 유학자로서 그가 지은 <화왕계>에는 차가 정신을 맑게 하는 건강음료로 사용되고 있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에 수록된 <화왕계>에는 장미꽃과 할미꽃이 의인화 대어 대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 하나는 붉은 얼굴, 옥 같은 하얀 이에 곱게 화장하고, 멋진 옷을 차려 입은 장미꽃이 간들간들 왕 앞으로 걸어가 왕과 함께 지낼 것을 청한다. 다른 하나는 베옷에 가죽 띠를 매고 허연 머리에 지팡이를 짚은 사내로 한눈에도 볼품없는 할미꽃 사내가 힘없는 걸음으로 구부정하게 걸어와서 “저는 서울 밖의 한길 가에 살고 있습니다. 비록 생기는 것이 풍족하여 기름진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차와 술로 정신을 맑게 할지라도, 상자 속의 반드시 양약(良藥)을 준비하여야 하는데 왕께서도 혹시 이런 생각을 갖고 계시는지요.”라고 충고할 때 왕은 할미꽃의 말에도 일리는 있지만, 어여쁜 여자는 얻기가 어려운 것이라면서, 은근히 장미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그러자 할미꽃 사내가 왕 앞에 다가 가서 따끔한 충고를 하는 내용이다. 그가 꽃을 의인화한 우화에서 꽃밭은 나라로, 꽃 중의 왕은 모란으로, 충신은 할미꽂, 간신은 장미로 의인화하였다. 신문왕은 설총의 <화왕계> 우화에 깊은 공감을 받고, 후대까지 기록해 두어 왕이 된 자들에게 경계로 삼도록 하였다. 이러한 꽃의 의인화 내용에는 머리를 맑게 하는 약으로 차가 나오는데서 신문왕 이전부터 차는 성행되었다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차는 기원 48년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인도인 아유타국 (아요디아, Ayodhya)에서 올 때 차씨를 가져왔다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김해의 백월산에 심은 죽로차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수로왕비 허씨가 인도에서 전해온 차종자라고 한다.(金海 白月山有竹露茶 世傳首露王妃許氏 自印度 特來之茶種云)” 이러한 전설 이외에 차의 역사적 기록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선덕여왕 때부터 이미 차는 성행되었다(茶自善德王時有之 至於此盛焉)”고 하여, 설총이 살던 경덕왕(742~765)대는 이미 차가 대중화되었던 시기로 원효와 함께 설총도 차를 애용한 차인가족이라고 볼 수 있다.
이혜자 <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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