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字論語> ‘後生可畏’ 후학이 가히 두려울 만하다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교육과 교수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후학이 두려울 만하니 앞으로 오는 자들이 나의 지금보다 못한다고 감히 누가 말하는가? 그러나 40∼50세가 되어도 알려짐이 없는 사람이라면 그 또한 족히 두려울 것이 없는 자이다.”(子曰 後生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子罕」 22)
‘후생가외(後生可畏)’는 지금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도 흔히 사용되고 있는 사자성어이기도 하다. “나중에 태어난 후배나 후학이 가히 두려워할 만한 존재이다”라는 뜻으로서, 후배는 나이가 젊고 의지 또한 나날이 성장하므로 학문을 계속 쌓고 덕을 닦으면 그 뛰어남은 언젠가 선배를 능가하는 경지에 이를 것이라는 말이다.
어쩌면 ‘선생(先生)’의 뜻을 “자기보다 먼저 태어난 사람”이라 정의내릴 수도 있고, 또는 “지식과 덕망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선생이라 규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보다 뒤에 태어난 사람이 곧 ‘후생’이며 요즘 말로는 ‘후배’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뒤에 태어난 사람이 부단한 노력을 통하여 선배나 선생보다 더 뛰어날 수 있도록 미래의 시대를 긍정적으로 보는 공자의 안목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혹자는 공자의 이 말씀에서 ‘후생’이란 곧 자신의 제자 ‘안회’를 지목한 것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안회는 스승 공자에게 ‘데미안’과 같은 존재였으니, 이 또한 하나의 해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좀 더 넓은 시야에서 이 경문을 바라본다면 ‘후생’은 역시 다음 세대를 책임질 젊은 친구들을 통칭하는 것이라고 바라봄이 더 나을 듯하다. ‘두려울 만하다’에서 ‘외(畏)’는 좋은 의미에서 ‘존경스럽고 주목할 만한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글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공자는 이 언설을 통하여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당시의 사람들에게 자각과 경종을 내리고 있으며, 미래의 세계를 짊어질 젊은 세대들에게는 낙관과 희망을 던지는 긍정적 메시지가 숨어있다. 물론 메시지도 중요하지만,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메신저는 더더욱 중요할 것이다. 이러한 말씀을 성인 공자가 하셨으니, 실로 경고와 잠언의 성격이 매우 농후하다. 인간 세상을 ‘네거티브’로 볼 것이 아니라, ‘포지티브’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 공자의 말씀 중에서 관건은 그 다음의 언사이다. ‘나이 40~50이 다되도록 이렇다할만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자라면 두려워할 바의 인물 축에도 못 낀다’는 것이다. 결국 이 말씀의 내면에는 40~50세가 되기 전에 무엇인가 자신만의 세계관(世界觀)과 가치관(價値觀)의 성(城)을 구축해 놓아라는 것이다. 역시 젊음과 청춘 시절을 막무가내 식으로 보내지 말라는 잠언적(箴言的) 성향의 말씀이다.
한편 ‘후생가외(後生可畏)’는 “나중에 난 뿔이 더 우뚝하다.”는 ‘후생각고(後生角高)’와 뜻이 서로 통하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후생각고’는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훨씬 나을 때 일컫는 말로서 우리들에게 흔히 잘 알려진 ‘청출어람(靑出於藍)’과도 일맥상통하는 성어이다.
필자 역시 교육계에 종사(從事)하고 있으면서 ‘후생가외’와 ‘청출어람’을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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