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소개> 초기 근대 서구지식인의 동아시아상과 지식체계
“예수회 선교사의 유교오리엔트 : 호혜적 교류 형상”<BR>전홍석 지음/320쪽/23,000원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의 ‘근대 오리엔탈리즘—부정적 동양 형상’을 거부하고 화합과 공존의 ‘호혜적 교류 형상’으로서의 동아시아상 확립
본 연구는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W. Said)가 공론화한 서구제국주의의 정복적이고 파괴적인 ‘근대 오리엔탈리즘—부정적 동양 형상’이 표면화되기 이전, 초기 근대 서구인의 동아시아 인식과 지식체계의 형성을 고찰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구체적으로는 16~18세기 가톨릭의 내화(來華) 예수회(Societas Jesu) 선교사로 대표되는 서구지식인들이 주도한 동아시아학, 곧 ‘천학(天學)’의 역사지형을 모델로 삼아 화합과 공존을 표방하는 ‘호혜적 교류 형상’과 그로부터 적출되는 동아시아의 풍부하고 다양한 문명ㆍ문화적 특질들을 정식화하려고 한다. 그럼으로써 동아시아 지역학의 지식체계에 대한 현재적 제고와 재창안을 목적으로 한다. 아울러 이 논제의 발상은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가톨릭선교사 동아시아학’ 연구를 통해 근대 서구와 일제의 ‘식민주의적 억압 형상’이 재생산해내는 동서양의 폐쇄적 관계성을 일소하고 보다 창의적이고 열린 ‘동아시아학 구성’에 일조할 것이라는 기대감에 기초한다.
사이드가 발제한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인의 문명중심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동된 문제다. 사이드는 학문의 형태를 취한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관하여 진실을 말하는 담론의 측면보다는 지식의 식민주의적 재구성, 곧 서구제국주의 담론이 창조해낸 구성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사이드에게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독특한 가치는 ‘문명’ 자체로부터 소외된 담론, 다시 말해 “동양을 지배하는 유럽적, 또는 대서양적인 권력의 표지”로서 그 영역은 정확히 제국의 영역과 일치한다. 이러한 사이드의 비판적인 시각이 “동양에 대해 ‘있는 그대로의’ 묘사로서의 표상이 아니라 ‘조작’으로서의 표상”이라는 서구인의 왜곡과 편견을 폭로해 일면 ‘동양의 실체’를 재인식케 함으로써 굴절된 동서관계에 획기적인 인식의 변화를 불러온 순기능적 역할을 간과할 수 없다. 사이드의 이론은 서구문화와 비서구문화 간의 상관관계에 대한 하나의 모델로서 서양학계에서 거의 패러다임적인 지위를 획득했다.
그러나 종래 사이드식 ‘동양의 이미지’는 서양이 자신의 부정적인 내면을 투사시켜 만들어낸 정체적이고 자신을 대변할 수도 없는 열등한 타자에 국한된다. 사이드는 존재론적 분절과 배제의 역학을 드러내는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담론(언설, discourse) 개념’을 계승, 근현대 영국, 프랑스, 미국에 의한 식민지 지배와 이 3대 제국의 지성과 상상력의 영역 속에서 생산된 수많은 서구의 문학작품과 문헌들을 분석함으로써 중동의 ‘무슬림오리엔트’를 구체화했다. 결국 사이드의 타자담론은 지리적 경계와 분석의 설정 대상이 중동인 이슬람문명권에만 맞춰져 동양과 관계해 온 다른 문명권의 경험을 배제하는 한계를 노정한다. 그러므로 이 논의에는 중국, 한국, 일본 등의 ‘동아시아’는 포함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긍정적 오리엔탈리즘(positive Orientalism)’을 활성화
이러한 문제인식은 ‘부정적 동양관’의 대척점에 위치한 ‘긍정적 오리엔탈리즘(positive Orientalism)’을 적극 활성화하는 작업이다. 최근 ‘포스트-오리엔탈리즘(Post-Orientalism)’의 연구동향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그 요점은 사이드식 식민지적 권력과 결합된 요소들의 중요성을 기본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넘어서서 동서양 문명을 대등한 상호작용으로 바라보고 오리엔탈리즘을 더욱 창의적이고 열린 개념으로 재조정하고자 하는 추세로 집약된다. 사이드 역시도 오늘날 외국문화연구의 본질론상 가장 중요한 일은 “오리엔탈리즘에 대체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연구”라고 말한다. 그 연구는 궁극적으로는 “어떻게 하면 타인을 억압하고 조작하는 것이 아닌 ‘절대적 자유와 자치(libertarian)’의 입장에 서서 상이한 문화와 상이한 민족을 연구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 것이리라”고 주장한다. 본 연구서의 논제와 그 연구방법론인 ‘비교문화 형상학(Imagologie)’은 이러한 사이드의 물음에 일정부분 회답해줄 수 있을 것이다.
원래 형상학적 연구방법은 비교문학의 한 분야에서 출발했다. 그러나 그 범위가 매우 광범위하여 학제 간 연구의 성격을 띤다. 이 분야는 1980년대 후반기 유럽, 특히 프랑스, 독일에서 중시되어 빠르게 발전했다. 프랑스에서는 형상학의 창시자 카레(Jean-Marie Carré)를 위시해 파조(Daniel-Henri Pageaux), 모우라(Jean-Marc Moura), 독일에서는 후고 뒤제링크(Hugo Dyserink), 일본에서는 히라카와 스케히로(平川祐弘), 츠루타 킨야(鶴田欣也), 그리고 중국에서는 멍화(孟華)가 각각 대표적인 주창자들이다. 비교문화 형상학은 특정 저작물 속의 ‘이국(타자) 형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나 형상학 영역에서의 ‘타자 형상’은 단순히 현실에 대한 복제식 묘사로 간주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아와 타자, 본토와 이역異域의 상호작용 속에서 연구된다. 더 나아가 이 자아와 타자 간의 ‘상호작용성’은 자기 정체성(identity)의 대립, 보충과 연동된 부정, 긍정이라는 상호교호의 주객형상으로 표출된다.
이 책은 가톨릭선교사의 한문 문헌들을 사상적 연속성에 초점을 맞추어 학문적 체계화를 시도한다. 그럼으로써 단발적이고 불연속적인 기존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가톨릭선교사 동아시아학—천학’이라는 체계 속에서 그 성립, 분화, 완결 과정을 통일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체적 조망도를 제시하고자 한다. 사실 역내 ‘가톨릭선교사 동아시아학’ 범주에 속하는 예수회의 ‘천학’은 그리스도교 유일ㆍ인격신(Deus)에 대한 유교적 ‘천’ 개념의 변용과 확대로 구성되었다. 그것은 입일‘상제’이궁물立一上帝(=天主)以窮物 형식으로 진행되면서 서양의 종교신학과 서양과학 등을 포괄하는 방대한 학술체계로 완성된 것이다. 그런데 그 전개 양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해보면 역사변증법적 정합성을 띤다. 제수이트(Jesuit, 예수회원) 리치가 정초한 ‘적응주의 천학’은 정명제(These)에 해당한다. 그리고 ‘보수주의(Conservatism) 천학’이 그에 대한 반명제(Antithese)로 등장했다면, ‘색은주의(Figurism) 천학’은 재차 ‘부정의 부정’이라는 합명제(Synthese)로 출현한 완결단계라고 할 수 있다.
△책의 효용성
이 책을 통해 기대되는 학문적ㆍ사회적ㆍ교육적 효용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동아시아의 초기 근대에 서양지식인 가톨릭선교사들에 의해 구축된 문헌들에 대한 ‘연구ㆍ분석 프레임’을 제시함으로써 이 분야의 새로운 지식과 이해의 지평을 넓히고 후속적인 연구를 촉진할 것이다. 베이징외국어대학의 중국해외한학연구센터가 추진하고 있는 방대한 바티칸도서관 소장 동서문화교류사 문헌총서 출간은 한국 학계에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 문헌들은 동서문화교류사, 유럽의 동아시아학사, 동아시아 서학사西學史, 동아시아 근대사, 명청사明淸史, 조선후기사, 동아시아 종교학, 세계적 근대성, 인문사회학 등의 분야에 있어 매우 중요한 사료적ㆍ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가톨릭 천학’은 역사상 한국,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지식인 전체가 호응했기 때문에 소위 중화민족주의에만 국한시킬 수 없다.
둘째, 새로운 비교문화학 영역과 그 역사모델을 도출할 것이다. 근현대 서구의 식민주의적 타자 형상이 그릇된 문명중심주의를 초래했다면 ‘긍정적 타자 형상’을 포용하는 비교문화학적 연구모델이 필수적이다. 그 목표는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기 가톨릭선교사의 ‘한문 문헌’을 오리엔탈리즘 본연의 ‘비교문화 형상학’ 차원에서 검토함으로써 동서양 교섭의 문화창발과 연동된 다원적이고 긍정적인 ‘타자 형상’의 궤적을 추적, 복원하는 것이다. 동질성을 탐구하고 이질성은 타협ㆍ조정하는 변증법적 경로를 역사적 실체로 보여줌으로써 다원주의시대의 공생과 연대를 위한 동서양의 문명교섭사적 모형을 창출할 수 있다.
셋째, 초기 근대 ‘가톨릭선교사 동아시아학’ 구축과 그와 관련된 ‘호혜적 형상’의 규명은 근대 제국주의시대에 왜곡되고 변질된 동아시아상, 그리고 ‘일본형 오리엔탈리즘—식민사관’의 상흔이 잔존하는 한반도 우리민족의 불균등한 의식을 바로잡아준다. 현재적 ‘동아시아성’ 구성은 건강한 문화적 ‘타자 형상’을 읽어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초기 근대 서구 최고의 지식인이었던 가톨릭선교사들의 ‘동아시아학—천학’을 통해 사이드의 이론과 대비되는 선명한 서구인의 ‘긍정적 동양 형상’, 아울러 그와 동반하는 ‘동아시아적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의 근대적 사유의 발단, 근대사상의 발생과정을 새로운 시각에서 심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서구지식인으로서의 가톨릭선교사들이 동아시아의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 상호작용한 역사적 사건이나 그 결과로서의 한문 문헌들은 동아시아의 근대사, 근대문화의 탄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조선후기 사상사와 문화사, 한국의 근대사상, 천주교, 동학東學, 기타 신종교를 포함한 근현대 한국의 종교학 분야 등의 연구 진척에 유효한 자극을 줄 것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동서양 문화교섭이 촉발시킨 자각적인 동아시아 근대 지향의 사유들은 인류의 보편적 현상으로서 ‘세계적 근대성’이라는 새로운 해석학적 이해의 지평을 열어줄 것이다.
다섯째, 가톨릭선교사의 한문 텍스트에 대한 연구는 그와 일체양면의 상보적 관계에 있는 ‘서구어 문헌’에 대한 진일보한 연구의 토대를 제공할 것이다. 유교인본주의에 의한 유럽 계몽사상가들의 지적 성취는 그리스도교 중국선교회의 ‘적응주의’, ‘보수주의’, ‘색은주의’ 등의 제반 유교 이해와 그 형상이 수렴되어 개진된 결과다. 따라서 이후 재화 선교사의 한문 문헌 및 서구어 보고서와 일지, 번역서 등에 관한 상호 유기적이고 계통적인 연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지식지도(Knowledge Map)를 안출함으로써 유럽계몽기 동서양 교섭관계, 그와 연계된 간-문명적 문화창신을 보다 정합적이고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여섯째, 가톨릭선교사로 대표되는 서구인의 ‘호혜적 교류 형상’의 발굴은 현금 당면한 세계문명의 상호 소통과 협력의 시대정신에 부응하는 ‘새로운 세계상’ 형성의 교육적 비전을 제시해준다. 타문화에 공감하고 다양한 가치와 모델들을 공유하고자 하는 ‘호혜적 세계상’과 그에 걸맞은 ‘자아 정체성’ 정립이라는 양대 과제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어줄 것이다. 더불어 이렇게 배양된 호혜적 인간관은 동아시아시민주의 차원에서도 동아시아 인문ㆍ종교ㆍ문화 교류, 동아시아 인문ㆍ종교ㆍ문화 공동체 기구 결성, 그리고 동아시아 평화공동체 구현을 위한 ‘동아시아대학’ 설립 등에 중요한 연대적 생명인자로 작동할 것이다.
동과서 02-333-7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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