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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성균관 대성전의 儒學者 차인들④ - 조선전기의 東方五賢 중 이황편

편집부
2015.01.15·5분 읽기·조회 59

 

 

 

성균관 문묘에 배향된 정여창, 김굉필, 조광조, 이언적, 이황은 조선 전기 성리학을 주도하던 한국 사상계의 중심인물들이며, 조광조를 제외하고는 모두 영남사람들로 광해군 2년(1610)에 동방오현으로 선정되었다.

 

차를 즐기던 정몽주의 제자들 중에서 향리에 내려가 지역 사회에 성리학을 보급시켰던 길재(吉再, 1353 ~1419), 이숭인 등에게 학통을 이어받은 김종직의 문하생들이다.

 

이숭인과 길재도 차에 대한 시를 남겼는데 영호남은 현재도 차의 주산지로 차를 쉽게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숭인(李崇仁, 1347~1392)이 남긴 차에 대한 수많은 다시 중 <백안렴사가 주신차(白廉使惠茶)>에는 한식 전에 딴 화전차(火前茶)가 나오며, 충선왕 때 예부에 소속된 임실주(林實周)에게 노아차를 보내는 ‘실주에게 차를 보내드리다’ 등의 내용이 전한다. 또한 길재는 조선 개국 후 정종 2년에 이방원이 태상박사로 임명하였으나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뜻으로 선산에 은거하며 후진교육에 힘써서 영남학통을 이었다. 길재가 은거하던 선비의 모습이 담긴 <산가서(山家序)> 차시에는 혼자서 차를 달이는 내용이 있다.

 

길제의 제자인 김종직(1431~1492)은 특히 김굉필 정여창 등의 후진을 길렀고, 차에 대한 관심이 가장 많았던 인물이다. 김종직은 성종 2년 경상도의 함양군수로 부임하자면서, 백성이 당시 농번기철이면서 차가 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차세를 억울하게 내야하는 농가 피해를 줄이기 위해 ‘1471년 차가 생산되지 않는 함양군민의 찻세를 위해 엄천사 북쪽 대숲에 몇 그루의 차나무가 있는 곳에 관영 차밭을 마련하여 대납하게 하였다’는 기록과 <다원병서 이수>를 통해 신라시대 차종자를 찾아서 심은 내용과 찻세가 농민을 압박하는 공물이 되었다고 전하고 있다.

 

고려시대를 이어 조선중기까지도 차는 불교의 재의식이나 유교의 제사, 궁중의 흉례 중 진전의식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의물이었으므로 공물로도 바치게 되었다. 공양왕에게 『주자가례』 의식의 시행을 최초로 주청한 정몽주는 점다법에 의한 차를 다려서 제상에 올렸고, 일상적으로도 즐겼다. 길재에 이어 학통과 차문화를 계승한 김종직은 정여창, 김굉필로 이어지고 김굉필에게 수학한 조광조로 이어지는 사림파가 형성되었다. 김종직이 생전에 지은 「조의제문」의 사건으로 무오사화가 일어나게 되면서 참수당한 김종직 문하의 김일손, 남효은, 이목, 권경유, 권오복, 허반 등이 있다. 남효은의 시<온당자명>에는 차가 나오며, 이목은 유가의 다성으로 부를 만큼 가장 위대한 창작 다서인 『다부』를 남겼다. 사화 때 난을 고하지 않은 죄와 김종직의 제자로서 붕당을 이루어 조의제문의 삽입을 방조한 죄로 귀향간 정여창, 김굉필, 정승조, 홍한 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림파는 정몽주→권근→길재→ 김숙자→김종직→김굉필→정여창→이언적→퇴계 이황 등으로 도맥이 이어진다. 사림파는 세조(1417~1468) 때 김종직이 관직에 진출한 이후 성종대에 이르러 훈구파에 필적하는 정치적 파벌을 형성하게 되었다. 훈구파란 원래 훈구공신 또는 훈구대신 등 오랫동안 공로를 세운 공신들을 말하나 세조의 왕위 찬탈에 협조하여 정치적 실권을 장악한 귀족적 관료학자들을 말하기도 한다. 이들은 연산군 때 갑자사화로 희생되나 중종반정 이후 조정을 장악하게 되고, 중종시대 기묘사화에는 일부 사림이 훈구파와 야합하여 신진 사림파를 축출하기도 하였으나, 중종 말기에는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림파 학자 중 가장 위대한 인물은 퇴계 이황으로 주자의 이기이원론을 발전시켜 이기호발설을 주장하였으며 성학십도를 저술하여 왕에게 올리기도 하였다. 그는 안동의 청량산을 유람하고, 선창범주 등의 차시를 남기고 있다

 

 

선창에 배를 띄움(仙倉泛舟)

 

一泓流閱幾千秋.

 

今見騷人上釣舟

 

蕩棠只從烟裏去

 

駑旋時向月中浮

 

筆牀茶謂能言鴨

 

細雨斜風不舞鷗

 

但識盈虛元有定

 

未妨吾道付滄洲.

 

한 줄기 흐르는 물 천년 동안 흘렀는가.

 

이제 시 읊는 사람을 보며 낚시배 위에 오르네.

 

물결 출렁임은 다만 물안개 속을 따라 흐르고

 

되돌아올 때는 달을 향해 떠있네.

 

필상과 부뚜막엔 차 다리고 오리와 얘기하며

 

이슬비에 바람 비껴 부니 갈매기 춤추지 않네.

 

다만 차고 비우는 것은 원래 정해져 있나니

 

유도(儒道)는 창주에 의지함이 무방하리라

 

 

이밖에 이황의 차에 대한 기록은 대나무로 지은 죽원에서 계수나무로 차를 끓이는 내용이 있으며, 월란암에 머물 때는 유독 차 샘을 두지 않아서 어찌 잔과 그릇을 깨끗이 닦겠냐며, 다구를 청결하게 다루는 고고한 선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혜자(성균관 여성유도회 중앙회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