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162군자와 소인의 호리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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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기미라는 것은 움직임의 미미한 것이니, 길흉이 드러나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것이다.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을 하기 때문에 종일토록 기다리지 않는다.(계사전, 예괘 육이효)
관녕과 화흠이 함께 채소밭에서 호미질을 하고 있었는데 땅속에서 금덩어리가 나왔다. 관녕은 마치 일반 잡석을 보듯이 여전히 호미질을 하며 밀쳐놓았는데, 화흠은 금덩어리를 손으로 잡아서 잠시 보더니 멀리 던져버렸다.
또 둘이 함께 앉아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지위 높은 관리가 멋진 가마를 타고 지나갔다. 관녕은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여전히 책을 보았지만, 화흠은 보던 책을 덮고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것을 본 관녕이 함께 앉아있던 멍석을 칼로 베어 따로 앉은 뒤에 “자네는 이제 내 친구가 아니다”라고 하며 절교를 선언했다. 이 내용이 바로 “관녕할석(管寧割席:관녕이 멍석을 자르다)” 또는 “할석절교(割席絶交:멍석을 잘라서 절교를 하다)”라는 유명한 고사로, 『세설신어』와 『몽구』에 전해진다.
화흠(華歆)과 병원(邴原)・ 관녕(管寧) 등은 후한말 삼국시대라는 대변혁기를 함께 산 친구였다. 이들이 무척 친했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마치 한 마리의 용이 되어 다니는 것 같다고 하며, 화흠을 용머리, 병원을 용몸통, 관녕을 용꼬리라고 했다. 부귀를 누리는 것으로 평가하면 당시 사람들의 평가가 정확했다고 볼 수 있다. 화흠은 제후로 봉해지고 정승이 되는 큰 출세를 했고, 병원은 조조 휘하로 들어가 중상급의 관직을 얻었고, 관녕은 평생 벼슬길에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화흠에 대해서는 두 가지 평이 있다. 하나는 청렴하고, 선견지명이 있으며, 남에게는 자애롭고 자식에게는 엄정한 뛰어난 정치가이자 학자라는 평이다. 다른 하나는 삼국지연의에 나오듯이, 새로이 떠오르는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서 황후의 머리채를 끌고 나가 죽이고 자신이 모셨던 황제를 폐위시키는 대악인의 모습이다.
왜 그럴까? 우선 그가 모시고 보좌한 사람들이 여러 명이었다. 대장군 하진, 동탁, 원술, 마일제, 손책, 손권, 조조, 조비, 조예 등등 75세에 죽을 때까지 주인을 계속해 바꾸어 갔다. 권력에의 끊임없는 욕심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때마다 윗사람에게 충성하고, 재물을 멀리하며, 노비들을 해방시켜주며, 친구 관녕을 자기 자리에 추천하고 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하는 등 칭송받을 일을 이어감으로써 자신을 포장하는 명분을 만든 것이다.
황금을 가지고 싶었지만, 선비가 재물에 관심을 가진다는 비난을 두려워하여 멀리 던져버리는 모습에서, 적어도 겉으로는 재물에 대한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을 알 수 있다. 실제로도 평생을 재물욕심은 부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관대작이 부러워서 넋을 놓고 바라보는 대목에서, 주변시선을 아랑곳하지 않는 권력욕을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권력을 위해서라면 의리에 반하더라도 주인을 여러 번 바꾸는 것은 물론, 자신이 모시던 황제와 황후를 시역하는 일이라도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그것을 미리 예측한 관녕이 절교를 선언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군자는 작은 조짐을 보고 일의 결과를 예측하기 때문에 일처리에 망설임이 없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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