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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164다산의 입영훈련

윤상철
2019.03.14·4분 읽기·조회 22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오는 마른 고기를 씹어서 황금을 얻으니, 바르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으리라. 상에 말하기를 ‘바르고 위태롭게 여기면 허물이 없음’은 마땅함을 얻었기 때문이다. (서합괘 육오효)

 

다산 정약용은 유학은 물론이고 불교, 천주교 등도 연구해서 정치제도와 일상생활에 활용한 위대한 학자이자 정치가이다. 500권이 넘는 방대한 저술활동을 할 정도로 학문적 호기심이 많은 그가, 규장각의 초계문신이 되어 정조의 절차탁마를 받게 된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정조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호시탐탐 노리는 정치꾼들의 암살모의에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몰라 불안해 했으며, 심지어는 왕이 된 뒤에도 침소로 들어온 자객에 의해 암살당할 뻔하기도 하였다.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고 백발백중의 활솜씨와 일급무사 못지 않은 칼솜씨를 연마해냈다. 처음에는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었지만, 무를 연마함으로써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함께 얻게 되는 전화위복을 삼은 것이다.

 

정조는 다산보다 10살이 더 많다. 다산의 천재성을 알아본 영조는 가끔 치기어린 내기도 했다. 예를 들면 “삼수변(氵)이 붙은 글자 많이 쓰기!” 같은 내기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내기에서는 승부를 가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조나 다산이나 외우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군주도통론(君主道統論)을 내세울 정도로 유학에 정통했던 정조의 시험문제는 어려워서, 다산도 낙제점수를 받아서 재시험, 3시험까지 치렀다는 기록이 『일성록』에 보인다. 공부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정조는 “문무를 겸비하는 것이 국운을 장구하게 하는 계책”이라면서 문무겸전을 요구했고, 다산에게도 무예를 연마할 것을 명하였다.

 

하루는 춘당대에서 초계문신들에게 50발씩을 쏘라고 명했다. 다산을 비롯한 7명이 4발도 못 맞추자 “그대들 7명은 문장은 뛰어나나 활을 쏠 줄 모르니 문무를 갖춘 재목이 아니다. 열흘간 북영에 입소해서 하루에 화살 100개씩 쏘는 훈련을 하라. 100발 중에서 20개를 맞추면 풀어주겠다”고 하였다. ‘북영’은 훈련도감의 본영을 말한다.

 

다산은 『여유당전서』 「북영벌사기(北營罰射記)」에서 “처음엔 활이 망가지고 화살은 구부러지고, 깍지는 떨어져 나가고 팔찌는 질질 끌렸다. 손가락은 부르트고 팔뚝도 부어올랐다. 말 타는 솜씨가 서투르다고 사람들이 얼마나 웃어대는지….”라고 썼다.

 

고생 끝에 10발에 셋을 맞히게 되자, “이젠 하루에 50발씩만 쏘고 남는 시간에는 경서의 뜻을 연구하라. 『시경』과 관련된 문제를 800조목 내리니, 조목별로 답안을 작성해서 올리라”고 명했다. 문과 무를 같이 수련하라는 것이다. 참으로 고통스런 강제 입영훈련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훈련에 합격한 다산은 “옛 사람들은 육예를 갖추지 않으면 선비라고 하지 못했다. 그래서 모이면 반드시 활쏘기를 했다. 그런데 성상의 덕분으로 활 쏘는 법까지 배우니 얼마나 행운인가?”라고 감격해 했다. 정조의 지옥훈련을 긍정적으로 극복함으로써 문무겸비한 학자로 대성할 바탕을 얻게 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어려운 일을 극복해야 소중한 경험과 재물을 얻는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