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167심유경의 사기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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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사는 솥이 다리가 부러져서 공의 밥을 엎으니, 그 얼굴이 땀으로 젖음이라 흉하다. 상에 말하길 ‘공의 밥을 엎음’이니, 신용이 어떠하겠는가?(정괘 구사효)
임진왜란의 선봉장으로 승승장구를 하던 소서행장은 자신의 군사력에 비해 지나치게 전선을 확대한 까닭에 대동강을 사이에 두고 위기에 봉착하게 되자, 명나라 병부상서로부터 ‘휴전을 이끌어내라’는 특명을 받아 파견된 유격장군 심유경이 휴전을 하자고 제의했다.
우여곡절 끝에 소서행장과 함께 일본으로 가서 풍신수길을 만난 심유경은 아연실색한다. 풍신수길이 ①명나라의 공주를 일본국왕의 후궁으로 삼을 것, ②중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교역하는 것을 승낙할 것, ③조선 8도 중 남쪽의 4도를 할양할 것, ④조선 왕자 및 대신 12인을 인질로 보낼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런 요구는 이해당사국인 조선은 물론이고, 명나라로서도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오만무례하고 방자한 조건이다. 심유경도 이러한 요구를 담은 휴전이 성립될 리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았다.
여기서 그만 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심유경은 대접을 잘 받는 사신놀이에 재미를 붙였다. ‘중국과 일본이 멀리 떨어져 있으므로 서로간의 소식에 밝지 못하고, 또 언어도 다르므로 거짓말을 해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왔다갔다 하면서 4~5년 시간을 보내면 저절로 휴전이 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한 심유경은 ‘풍신수길을 일본왕으로 인정하는 책봉서를 내리기를 바라며, 또 명나라를 대국으로 모시며 조공을 하고 싶은데 허락해주시기를 바란다’는 터무니없는 휴전조건을 명나라에 제시하였다.
명나라로서는 속국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인데 무엇을 망설이겠는가? ‘기껏 전쟁을 일으킨 이유가 속국이 되고 싶다는 것인가? 풍신수길의 정신상태가 의심스럽다’는 의견도 잠시, 곧바로 “야만국에 보내는 것이니, 심유경 편으로 책봉서를 보내버리자”는 의견과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서 전달하자”는 의견을 다투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심유경의 허풍이 먹혀들어간 것이다. 결국 1596년에 정식으로 사신을 보내서 풍신수길을 일본 국왕에 봉한다는 책봉서와 옥새를 전하였다.
그 이전에 심유경은 소서행장과 밀약을 맺었다. 즉 ‘풍신수길은 글자를 모른다. 그러니 그의 휴전조건에 맞게 명나라 황제의 책봉서를 거짓으로 읽어주고, 명나라 황제에게는 명나라의 입맛에 맞게 풍신수길의 편지를 거짓으로 만들어주자’고 한 것이다. 서로 자기 입맛에 맞는 내용이라 생각해서, 휴전조약에 도장 찍으면 우선 급한 불은 끌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드디어 풍신수길에게 명나라 황제의 서신을 바쳤다. 1592년에 시작한 휴전회담이 4년 만에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거짓으로 읽어주기로 한 역관이 사실대로 읽고 말았다. 순간 풍신수길의 얼굴이 야차같이 변하며 곧바로 정유재란을 일으켰다.
그 결과 심유경은 물론이고 그의 후견인이었던 병부상서 석성(石星) 역시 삭탈관직되어 죽임을 당하게 된다. 간 큰 방자(房子)를 믿고 일을 맡긴 죄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믿어서는 안 될 소인에게 큰일을 맡기면 폭삭 망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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