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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風乎無雩’ 무우 땅에서 바람 쐬다

김용재
2019.05.08·7분 읽기·조회 77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자로․증석․염유․공서화가 모시고 앉았는데,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하루라도 너희들보다 나이가 많다고 하여 나를 어렵게 여기지 말라. 너희들이 평소 말하기를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만일 혹시라도 너희들을 알아준다면 어찌 하겠느냐?” 자로가 경솔하게 대답하였다. “천승의 나라가 큰 나라의 사이에 끼어 있어 전쟁이 일어나고 기근이 들어도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용기가 있고 또 방향을 알게 할 수 있습니다.” 공자께서 빙그레 웃으셨다. “구야! 너의 뜻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말하였다. “사방 60리, 70리, 혹은 50리, 60리쯤 되는 나라를 제가 다스리면, 3년에 이르러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겠지만, 예악으로 말하면 군자를 기다리겠습니다.” “적아, 너의 뜻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말하였다. “제가 능하다는 말이 아니오라, 배우기를 원합니다. 종묘의 일과 또는 제후들이 회동할 때에 현단복을 입고 장보관을 쓰고 조금 돕고자 합니다.” “점아, 너의 뜻은 어떠하냐?” 그는 비파 타기를 중간에 쉬더니 쨍그렁 하고 비파를 놓으며 일어나 대답하였다. “세 사람이 말한 것과는 다릅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무엇이 해롭겠는가? 또한 각기 자기의 뜻을 말한 것이다.” “늦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갓을 쓴 어른 5, 6명과 동자 6, 7명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 쐬고 노래하면서 돌아오겠습니다.” 공자께서 ‘아!’ 하고 감탄하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점을 허여하겠다.” 세 사람이 나가자, 증석이 뒤에 남았다가 말하였다. “저 세 사람의 말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또한 각각 제 뜻을 말했을 뿐이다.” “선생님께서는 어찌하여 유에 대하여 빙긋이 비웃으셨습니까?”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예로써 해야 하는데, 그의 말이 겸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빙긋이 웃은 것이다.” “구가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사방 60리, 70리 또는 50리, 60리가 되고서 나라가 아닌 것을 어디서 보겠느냐?” “적이 말한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이 아닙니까?” “종묘의 일과 회동하는 일이 제후의 일이 아니고 무엇이겠느냐? 적이 작은 보좌원이 된다면 누가 능히 큰 보좌원이 될 수 있겠느냐?”(子路曾晳冉有公西華 侍坐러니 子曰 以吾一日長乎爾나 毋吾以也하라 居則曰 不吾知也라하나니 如或知爾면 則何以哉오 子路 率爾而對曰 千乘之國이 攝乎大國之間하여 加之以師旅오 因之以饑饉이어든 由也爲之면 比及三年하여 可使有勇이오 且知方也케하리이다 夫子哂之하시다 求아 爾는何如오 對曰 方六七十과 如五六十에 求也爲之면 比及三年하여 可使足民이어니와 如其禮樂엔 以俟君子하리이다 赤아 爾는何如오 對曰 非曰能之라 願學焉하노이다 宗廟之事와 如會同에 端章甫로 願爲小相焉하노이다 點아 爾는何如오 鼓瑟希러니 鏗爾舍瑟而作하여 對曰 異乎三子者之撰호이다 子曰 何傷乎리오 亦各言其志也니라 曰 莫春者에 春服이 旣成이어든 冠者五六人과 童子六七人으로 浴乎沂하여 風乎舞雩하여 詠而歸하리이다 夫子喟然歎曰 吾與點也하노라 三子者出커늘 曾晳이 後러니 曾晳이曰 夫三子者之言이 何如하니잇고 子曰 亦各言其志也已矣니라 曰 夫子何哂由也시니잇고 曰爲國以禮어늘 其言이 不讓이라 是로 哂之호라 唯求則非邦也與잇가 安見方六七十과 如五六十而非邦也者리오 唯赤則非邦也與잇가 宗廟會同이 非諸侯而何오 赤也爲之小면 孰能爲之大리오.「先秦」25)

 

이 문장은 공자가 만년의 나이에 ‘자로’ ‘증석’ ‘염구’ ‘공서화’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오고 갔던 대화 중의 하나다.

 

공자는 먼저 4명의 제자들에게 나이 많은 스승의 앞이라고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너희들의 포부를 말해보라고 하신다.

 

이때 자로가 제일 먼저 나와 자신은 혼란과 속박을 받고 있는 천승의 나라 제후국도 자신이 통치하면 금방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고 호언한다. 뒤이어 염구는 사방 50~70리(里) 되는 작은 나라도 자신이 다스릴 경우 3년 안에 백성을 풍족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자랑한다. 이에 공서화는 제후국과의 외교적 만남에서 집례자가 되고 싶다고 소망을 피력한다. 집례자는 지금으로 말하면 외무부장관이나 차관으로서 외교의 실무를 담당하는 직책을 의미한다.

 

공자는 이들 세 명의 제자들의 말에 탐탁치 못했기 때문에, 끝으로 남아있던 증석에게 ‘너는 무엇을 하고 싶냐’고 재차 물으셨다.

 

증석은 『논어』 전편에 자주 등장하는 증삼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증석은 ‘늦봄이 찾아오면 어른 대여섯 명과 아이 예닐곱 명과 함께 기수(沂水) 가에서 목욕하고 무우(舞雩) 땅에서 바람 쐬고 노래 부르며 살겠다’고 대답한다.

 

공자는 증석의 말에 화색이 돌며 그를 최고의 제자로 받아들인다. 물론 이 4명 가운데 최고를 의미한다. 공자는 ‘자로’ ‘염구’ ‘공서화’ 등 세 명의 포부를 들으신 후 그것도 저마다의 희망일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인정하면서도, 왜 ‘증석’의 말에는 맞장구를 치면서까지 기쁨을 표출하셨을까?

 

공자는 아마도 앞서 말한 3명의 제자들이 모두 사사로운 욕심과 포부를 던지며, 인생의 즐거움보다 찌들어 살아가는 속세의 일을 앞 다투고자 했던 모습에서 다소 실망감을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정치적 자리를 탐내고 있었으니, 공자의 실망은 더더욱 컸을 것이다.

 

반면에 ‘증석’은 지엽적인 정치보다, 또 인간의 욕심과 야망을 내세우기보다, 현재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연과 더불어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삶을 꿈꾸는 기상을 피력했으니, 공자는 그의 말에 감탄과 경의를 표한 것이다.

 

기실, ‘기수’는 공자의 고향 노(魯)나라의 도성 남서쪽에 위치해 있는 조그마한 강이며, 『한서지리지(漢書地理志)』에 의하면 온천이 샘솟는 지역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한편 ‘무우’는 대대로 기우제(祈雨祭)를 지내며 제단(祭壇)의 터가 있는 숭고한 자리라고 알려져 있다.

 

‘증석’의 말에 비친 ‘기수’가와 ‘무우’ 땅이 풍겨주는 이미지가 마치 공자가 늘 공경하던 예의(禮儀)를 치르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였으니, 공자의 탄식을 자아내기에 더 이상 좋은 곳은 없어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정치적 야욕과 야망을 불태우며 인간의 끝없는 욕심을 드러낼 때, 누군가는 자연을 벗삼아 조상의 얼을 모시며 유유자적하게 삶을 마감하고자 했던 모습을 보였다면, 정말 그들의 인생에 대한 격(格)을 다시 한 번 평가하게 될 것이다.

 

옛말에 ‘늙은 소나무가 고향을 지킨다’는 속담이 있다. 부귀영달을 쫒아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한 친구가 있는가하면, 고향에서 묵묵히 부모를 모시며 조상대대로 물려온 터를 지키는 대장부의 의연한 모습도 결코 실패한 인생은 아닐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