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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無信不立’ 신뢰가 없다면 설 수 없다

김용재
2019.06.26·4분 읽기·조회 37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자공이 정치를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풍족히 하고, 병력을 풍족히 하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자공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린다면 이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병력을 버려야 한다.” 자공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해서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하니,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사람은 신뢰가 없다면 설 수 없는 것이다.”(子貢이 問政한대 子曰 足食 足兵이면 民信之矣리라 子貢曰 必不得已而去인댄 於斯三者에 何先이리잇고 曰 去兵이니라 子貢曰 必不得已而去인댄 於斯二者에 何先이리잇고 曰 去食이니 自古皆有死어니와 民無信不立이니라. 「顔淵」 7)

 

‘무신불립(無信不立)’은 ‘믿음이 없으면 일어설 수 없다’는 뜻으로서, 정치나 개인의 관계에서 믿음과 의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용어이다. 공자 생존 당시 춘추시대는 ‘신뢰’의 위기시대라고 축약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500여 년이 지난 오늘의 자본주의 위기 또한 ‘신용’과 ‘신뢰’가 무너진 위기의 시대라는 점이다.

 

공자의 󰡔논어󰡕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역시 세계적 차원의 위기를 넘어 새롭게 구상할 사회 또한 그 체제의 바탕이 무엇이든, 그 사회의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신뢰’에 기초하여 세워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것이 곧 공자가 제시한 인간 문명사회의 조건인 셈이다.

 

환언하자면, 지금의 민주주의가 정치적으로 안정되어 운영되려면 사회구성원 간의 신뢰가 필수적이어야만 한다. 결국 민주주의를 성공적으로 발전시켜 온 국가들의 ‘신뢰 수준’은 대부분 높았던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라는 미국 정치가는 ‘국가 경쟁력’이란 그 사회가 고유하게 지니고 있는 신뢰의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신뢰’란 그 사회 구성원들이 보편적으로 정해놓은 규범에 기초하여 규칙적이고 정직하게, 그리고 협력하여 행동할 것을 서로에게 기대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또 ‘퍼트남’이라는 미국 정치학자는 1960년대 후반부터 미국에서는 ‘나 홀로 볼링’을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상에 근거하여 미국 사회가 깨진 유리조각처럼 파편화되어버린 것임을 우려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신뢰’는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집단, 사회, 국가를 운영하는 데에 있어 최적의 단초가 되는 매우 중요한 덕목이다.

 

그렇다면 이 󰡔논어󰡕 경문에서 공자가 말하고 싶었던 ‘신뢰’란 어떤 의미였을까? 군사력보다, 먹는 것보다 더 존귀하게 여겼던 ‘신뢰’는 단순히 상호 간의 믿음만을 일컫는 단순 개념이 아니었을 것이다.

 

여기에 반영된 ‘신뢰’는 첫째, 언행과 가치관이 일치하는 ‘성실함’도 내포되어 있다. 성실함에는 ‘정직함’이 담보되어 있기 마련이고, 자신의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익보다 원칙과 공익을 우선시 하는 ‘겸손함’마저 깃들어 있다.

 

둘째, 서로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야 말겠다는 ‘용기’와 ‘의지’가 공유되어 있어야 한다. 조직과 집단을 위해 자신을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용기와 의지야말로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훌륭한 정의이다.

 

셋째, 서로의 과업을 추진해나가는 방식을 인정하는 것이다. 결과와 성과 위주의 스타일보다, 단계적으로 서로의 재능을 공유하며 문제 해결방법을 갈구하는 것이야말로 상호 신뢰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단서이기 때문이다.

 

자공은 공자의 제자 가운데 경제력이 가장 탁월한 비즈니스맨이었다. 그에게 공자가 가르쳐준 것은 ‘돈’보다 ‘신뢰’에 비교우위를 두라는 점이다. 아마도 지금의 경제인들, 정치인들에게 부지기수로 인용되어야만 하는 문구가 아닐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