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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君君臣臣’ 임금이 임금답고 신하가 신하답다

김용재
2019.07.28·4분 읽기·조회 151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제경공이 공자에게 정사를 묻자, 공자께서 대답하셨다. “임금은 임금 노릇하며, 신하는 신하 노릇하며, 아버지는 아버지 노릇하며, 자식은 자식 노릇하는 것입니다.” 공이 말하였다. “좋습니다. 진실로 만일 임금이 임금 노릇을 못하며, 신하가 신하 노릇을 못하며, 아버지가 아버지 노릇을 못하며, 자식이 자식 노릇을 못한다면, 비록 곡식이 있은들 내 그것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齊景公이 問政於孔子한대 孔子對曰 君君臣臣父父子子니이다 公曰 善哉라 信如君不君하며 臣不臣하며 父不父하며 子不子면 雖有粟이나 吾得而食諸아.「顔淵」11)

 

이 경문은 춘추시대 제나라 경공과 공자 사이에 오갔던 실질적 사료가 있는 문구다. 공자가 제나라를 방문하였을 때,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무릎을 꿇고 신하의 자리에서 고개를 약간 올려 답했던 공자는 제경공의 손과 발만 보일 뿐이었다. 제경공은 당상(堂上) 위 의자에 앉아 있었고, 공자는 당하(堂下)에서 앉아있었기 때문에 공자의 첫 시선이 제경공의 발과 손밖에 볼 수 없었던 것은 물리적으로 당연한 상황이었다.

 

이때 공자가 바라본 제경공의 첫인상은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에 차여있었던 금은보화의 가락지들이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반지 20개가 그의 손가락과 발가락에 모두 채워져 있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그 가락지 20개가 모두 백성의 혈세요 피눈물로 만들어진 것이라 생각했다.

 

이에 정치에 대한 물음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공자는 대답을 내놓는다. “정치란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와 같은 것입니다.”

 

제나라 경공은 58년 동안이나 군주의 권좌에서 호령했던 사람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 조선시대 때 영조가 53년 재위에 있었으니, 춘추시대 제경공과 조선의 영조대왕은 장기 집권했던 왕으로서 족적에 남을만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러 사료에 의하면 제경공은 욕심이 많았지만 우유부단했으며 영민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이러한 제경공에게 공자의 ‘정명(正名)’ 사상, 즉 “군군신신부부자자”의 대답은 어느 정도 인지되었을까? 해답은 동문서답 격이었으며, 코믹한 현장에서의 담론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그만큼 공자의 답변에 제경공은 민첩하게 알아듣지 못했을 뿐, 학식이나 덕망이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군주였다.

 

이 경문의 “군군신신부부자자(君君臣臣父父子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부모는 부모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환언하자면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마음을 다하고, 신하는 신하로서의 예의를 다하며, 부모는 부모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자식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전적 개념을 차치하더라도, 이 문장에 담긴 속뜻은 매우 지난(至難)한 과제임이 분명해 보인다. 이 문장의 개념 정의가 “~답다”로 풀이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답다”이다. 임금이 임금답기 위해서는 임금으로서 지켜야 할 의무와 책무를 다해야만 한다. 부모, 스승, 자식 역시 그들의 지위에서 지켜내야 할 임무와 도리를 완수해야만 “~다울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유가에서는 ‘정명론(正名論)’ 또는 ‘정명사상(正名思想)’이라고 명명한다. 모든 사람이나 사물은 그 명분대로 움직이고, 또 명분에 맞게 존재하며, 그 명분에 따른 역할과 소임을 해갈 때에 비로소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는 뜻이다.

 

즉 인간사회는 무리를 지어 조직을 형성하기도 하며, 나아가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도 한다. 이 같은 조직과 집단은 복잡다단한 일과 다양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복잡하고 다양한 조직이 마치 톱니바퀴가 맞물려 움직이듯, 역동적이고 규칙적인 사회를 이루어내고자 한다면 성원 각자가 자신의 위치에서 제 역할을 정확히 인식하고 맡겨진 소임을 정확히 수행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것이 곧 공자의 ‘정명(正名)’이다. 그 이름에 부합하는 실질적 존재가 있기 마련이며, 명분에 상응하여 그 실질을 바르게 하는 데에 주력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