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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173박쥐의 자승자박

윤상철
2019.07.29·4분 읽기·조회 26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사는 곤한 몽이니 인색하도다. 상에 말하길 ‘곤한 몽이니 인색함’은 홀로 실(양)에서 멀기 때문이다.(몽괘 육사)

새 중의 왕인 봉황이 생일잔치를 하게 됐다고 한다. 모든 새가 봉황의 생일을 축하하려고 한자리에 모였는데 박쥐만 안 보였다. 화가 난 봉황이 박쥐를 잡아놓고 호통을 쳤다. “네가 감히 내 생일잔치에 빠질 수 있느냐!” 그러자 박쥐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나는 다리가 넷이고, 자식을 낳을 때도 알이 아니라 새끼로 낳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새들의 모임에 참석한단 말입니까?”

그 말에 봉황이 박쥐를 보니 정말로 다리가 넷이었다. 박쥐가 얼른 날개를 접어서 발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다리가 넷인 새가 세상에 없고, 또 알로 번식하지도 않는 박쥐를 새라고 할 수 없었다. 머리를 긁적이던 봉황이 결국 박쥐를 풀어줬다.

이번에는 짐승의 임금인 기린의 생일날이 되자 온갖 짐승들이 모두 참석해서 축하를 했다. 그런데 박쥐가 보이지 않았다. 기린도 박쥐를 잡아들여서는 “어찌 내 생일에 참석하지 않는 게냐!”하고 호통을 쳤다. 박쥐가 아주 당연하다는 듯이 “나는 날개가 있는 새인데 어찌 짐승의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꾸짖는 것입니까?” 날개를 펼치며 퍼덕이는 박쥐를 보고는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날짐승과 길짐승 모두 내 편을 만들 수 있었는데, 양쪽 다 사이가 멀어졌다. 자기 편의에 따라 새도 됐다가 짐승도 됐던 박쥐는, 결국 양쪽의 미움을 받아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 있다가 밤에만 밖으로 나오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박쥐처럼 자의대로 자신의 역할을 정하고 맘대로 핑계를 대는 것을 박쥐가 구실을 만들어 피했다 해서 ‘박쥐구실’이라 하고, 한자로는 ‘편복(박쥐)의 역할’이라는 뜻으로 ‘편복지역(蝙蝠之役)’ 또는 박쥐가 임금의 생일잔치에 참가하지 않았다고 해서 ‘편복불참(蝙蝠不參)’이라고도 한다.

박쥐는 눈이 안 보이는 대신 귀가 엄청 밝아서 ‘밝쥐’라고 했다고 한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도 박쥐를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집의 지붕모퉁이에 둥지를 튼 박쥐는, 사람의 말까지 잘 알아들어서 ‘박쥐를 잡는다, 쫓아낸다’ 등의 말을 하면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미리 피한다고 한다.

또 ‘내일 추수한다’고 하면 사람보다 먼저 추수를 해서 저장해 놓는데, 특히 율무를 좋아해서, 율무를 추수할 때는 말없이 몰래 해야지, 조금이라도 낌새를 보였다면 좋은 율무는 박쥐가 다 가져간다는 것이다.

박쥐는 혼자 사색하는 것을 좋아하고, 신선처럼 한자리에 있으면서 수도하는 일도 잘하며, 고급정보에 밝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나만 편하고 나만 잘났다고 하는 마음 때문에 외톨이가 되었다. 사람으로 치면 독불장군이라서 큰일을 못하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승진과 관계없이 사는 말단 직장인, 혹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만 즐기며 사는 사람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아무리 좋은 재질을 타고 태어났다 하더라도,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주고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멀리하면 큰일을 못하고 곤궁하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