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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行之以忠’ 행하기를 충으로써 한다

김용재
2019.08.08·6분 읽기·조회 28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충(忠)’의 훈(訓)을 ‘충성하다’라 풀이한다. 그러나 이 글자의 자형(字形)을 살펴보면 ‘중(中)’과 ‘심(心)’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충’은 ‘내 마음 속[中]’, 또는 ‘내 마음의 가운데[中]’라는 의미며, 곧 ‘중심(中心)’이란 뜻이다.

이와 반대로 ‘환(患)’이라는 글자를 예로 들어보면 이러한 의미가 더욱 명확해질 것이다. ‘환’의 자형은 ‘중(中)’ 두 개와 ‘심(心)’ 하나로 이루어진 글자다. 내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중심이 두 개라는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연인이 두 사람이거나, 내가 모셔야할 군주가 둘이라고 한다면, 과연 그 마음이 진솔함과 진실함을 충분히 드러낼 수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만으로도 이미 진정성을 찾기 어려울 것이며, 그 진정성의 판단 기준은 그 누구보다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을 터이다.

이와 같이 자형만으로 살펴보아도 ‘충’은 남을 향하는 ‘대타적(對他的)’ 충성의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을 상대로 하는 ‘대자적(對自的)’ 의미의 진솔함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이다.

그렇다면 『논어』「안연」편에서의 ‘행지이충’은 어떤 의미였을까? 제자 자장(子張)이 공자에게 ‘정치’를 묻자 공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거처함에 게으름이 없고, 행동함에 충(忠)으로써 하는 것이 정치다”라고 답변하신다.

주지하다시피, 공자가 제자들에게 교육하는 방법 중 가장 특징적인 것 중에 하나는 ‘상대성’에 입각하여 지도하였다는 점이다. 따라서 공자의 답변으로부터 그 제자의 평소 모습을 역(逆)으로 추적할 수 있는 셈이다.

이 경문에서도 공자는 자장에게 게으름피지 말고 진솔함으로써 정치하라고 코멘트를 주셨다. 그렇다면 자장은 평소 나태하였고 충실하지 못한 제자였다고 추정이 가능하다.

실제로 자장은 『논어』에 약 19회나 등장하는 제자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따르면 스승 공자보다 무려 48세 연하이며, 자하·자유와 함께 공자 말년 가장 강력한 인물로 평가되기도 한다.

다만, 공자의 제자 중 가장 독특한 인물이었던 것만큼은 사실인 것 같다. 「선진」편에 공자는 “자고(子羔, 高柴)는 어리석고, 증삼(曾參)은 노둔하고, 전손사(자장)은 한쪽만 잘하고, 자로는 거칠다”라 평한 바 있다.

이때, 공자는 자장을 편벽(偏僻)된 인물로 평가하고 있는데, 여타의 주석에서도 자장은 외모나 겉치레만 신경 쓴다고 폄하하고 있다.

또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의 어진[仁] 정도에 대하여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過]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不及].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라고 평하였다.

이 두 개의 경문만 보아도 자장은 어느 한 쪽으로 너무 치우친 인물이었다. 「위정」편을 보면 자장은 공자에게 “녹을 구하는 방법”을 묻는 장면이 나온다. 즉 어떻게 하면 돈을 빨리 벌 수 있냐는 물음이었다. 자장은 그만큼 현실적인 인물이었으며 세속적 성공과 출세에 관심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급기야 「안연」편을 보면, 자장은 “선비가 어떻게 행동하면 가문과 나라에 소문이 날 정도로 도달할 수 있습니까?”라고 공자에게 묻기도 한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자장은 공문의 제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어린 축에 속하기도 하였지만, (기록에 의하면 증삼보다 2세 연하임) 매우 현실적이고 출세 지향적이었던 인물이었던 것만큼은 사실인 듯하다.

순자도 자장학파를 겉만 번지르게 꾸미는 학단(學團)이라고 비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린 자장이 공자학단에 있어 그 누구보다 훌륭한 질의자였다는 점이다.

『논어』에 「자장」이라는 편명이 있고, 스승 공자와 토론하기를 좋아했고, 남들이 내놓기 어려운 현실적인 측면에 대하여 직설적인 화법으로 담론의 장을 이끌어내었다는 점이다.

흔히 유가는 명분만 그럴싸하고 실질이 약한 학문집단이라고 비판받기 일쑤다. 그러나 자장은 스승 공자와 선후배들이 즐비한 이 유가의 선비집단에서 실리 위주의 모습을 되찾고 싶었던 인물이었지 모른다.

또 정치를 묻자 공자가 따끔하게 일침(一針)해 주신 경고, 즉 “게으름피지 말고 충실(忠實, 誠實)하게 임하라”는 가르침을 고지식하게 행동으로 옮겼던 제자 중의 제자였다. 「위령공」편에는 스승 공자의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하여 자장은 자신의 허리띠에 공자의 말씀을 기록하는 모습이 실려 있다. 그간의 나태와 외모만을 일삼던 자장이 근면과 성실을 곧바로 행위로 옮길 수 있었던 개과(改過)의 모습을 통하여, 정치라는 것은 ‘나’ 자신부터 바꾸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반문해본다.

『천자문』에도 ‘학우등사(學優登仕)’라는 말이 나온다. “배움이 넉넉하면 벼슬길에 오른다”는 뜻이다. 벼슬길에 오른다는 것은 남을 다스리는 계층으로 떠올랐다는 것이고, 그것은 정치가 가능한 반열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그러나 그 배움이 나의 외모와 나의 가문만을 위하는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니라, 얼마만큼 타인과 나를 동일시하며 봉사할 수 있는 ‘충’의 자세를 견지할 수 있는지 반성해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