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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博文約禮’ 널리 학문을 닦아 사리에 밝고 예절을 잘 지킴

김용재
2019.08.27·5분 읽기·조회 57

 

김용재 / 성신여대 한문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널리 글을 배우고 예(禮)로써 요약한다면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子曰 博學於文이요 約之以禮면 亦可以弗畔矣夫인저.「顔淵」15)

이 내용은 앞서 「옹야」편에서도 보이는 문장으로 『논어』에 중첩되는 경문이다. 다만, 「옹야」편에서는 군자를 문두에 놓아 군자가 지켜야 할 규범이나 준칙 정도로 풀이되어 있다면, 여기 「안연」편에서는 경문의 첫 시작에 군자라는 표현이 없다는 것이 상이한 점이다.

경문에 군자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식인으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덕목이 어떠한지가 관건임을 알아야 한다.

이 경문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렇다. 공자가 말씀하시길 “군자가 널리 배우고 예로써 그것을 요약한다면 도에 어긋나지 않는다”라 하였다. 이 말씀의 본지는 군자가 지식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으면 무척 바람직한 형상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지식이 단순하게 ‘앎’ 그 자체만으로 머무른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음을 경계하신 것이다.

즉 자신의 폭넓은 지식은 반드시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하며, 그 행동은 늘 예의에 맞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禮)’는 당연히 당시의 도덕규범에 해당되지만, 이 역시 시의적절한 행동거지(行動擧止)의 준거가 되어야만 그 의미를 되찾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시(詩)’·‘서(書)’·‘역(易)’이 훗날에 이르러 모두 ‘경(經)’의 반열에 오르며 『시경』·『서경』·『역경』이라 칭송되었지만, 유독 ‘예(禮)’만큼은 ‘예경(禮經)’이 못되었고, ‘기(記, 기록할 기)’를 붙여 『예기』가 되었다. 과연 왜 그랬을까? 그것은 ‘예(禮)’가 시대와 장소, 가문과 나라, 지정학적 위치와 위계 등에 따라 얼마든지 가변적 형태를 보일 수 있다는 방증(傍證)이다.

예컨대 내륙에 사는 사람의 제례와 강이나 바닷가 주변에 사는 사람의 제례를 생각해 보자. 양쪽 모두 先人에 대한 예를 올리는 마음은 동일하나, 현재 처하고 있는 지역에 따라 제수(祭需)에 차이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내륙에 사는 이가 제수를 준비할 경우 아무래도 금수가 많이 제사상에 오를 것이고, 해안에 사는 사람이 제를 올릴 때에는 어류가 제사상에 조금이라도 더 풍부히 오를 것이다.

또 예전에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요즘엔 이러한 말이 무색할 정도로 바뀌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남녀가 서로 마주하고 공부하게 되면 서로에게 학습효과가 달라진다고 하며, 나아가 이미 남녀 간의 위계는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이처럼 예(禮)는 만고불변의 ‘상도(常道)’로서 본질적 마음이 중요한 것은 당연하지만, 그 예(禮)를 지키는 사람들의 모습은 시대와 지역 등 가변적 요소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禮)는 ‘경(經)’이기에 앞서 ‘기(記)’로서의 충분한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는 중요한 저점이며, 인간행동 준칙의 ‘권도(權道)’로서의 역할을 자임하는 특수한 질서이자 준칙인 셈이다.

공자의 가르침 역시 ‘약례(約禮)’라 표현하심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진 군자, 즉 ‘지식인’이라도 그 시대에 맞게 시의성과 융통성으로써 행위를 단속시켜줘야 함을 경계하신 것”이다.

또 이 경문에서 우리는 공자의 ‘학문방법’내지 ‘교수-학습 지도법’에 관한 상세한 면모를 찾아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박(博)’과 ‘약(約)’은 ‘길항(拮抗)’ 관계에 있는 어조이다. ‘넓다’라는 ‘박’과 ‘요약하다’라는 ‘약’은 서로에게 반대되면서도 서로의 변증관계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론적 지식에 해당하는 ‘문(文)’은 부단하게 넓혀가야만 하는 대상이 되는 것이고,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주는 ‘예(禮)’는 핵심과 요체로 집약시켜 보여줘야 하는 실천적 면모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논어』에서의 이 문장은 공자가 당시의 위정자와 같은 지배층이나 혹은 재야의 지식인에 해당하는 군자에게 일침을 가한 잠언(箴言)적 성격이 숨어 있다. “이 시대를 움직이는 위정자여! 지식인이여! 부디 지식의 범주를 매우 광범위하게 넓혀 공부해나가는 것도 좋지만, 그러한 지식이 갖는 한계를 ‘예(禮)’로써 집약시켜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