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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72 이기지 못할 줄 알면서 싸우는 것도 잘못이다

편집부
2015.05.12·4분 읽기·조회 15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구는 발꿈치가 나아가는데 용감함이니,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리라. 상에 말하기를 ‘이기지 못하면서 나아감’이 허물이다.[夬卦 初九]

 

 

 

양진(楊震)의 자(字)는 백기(伯起)이고 홍농(弘農)의 화음(華隂) 출신으로 후한의 중기 사람이다. 가난하였지만 학문을 좋아해서 여러 학문에 통달하였으므로, 당시의 선비들이 말하길 “관서의 공자님”이라고 칭찬하였다. 안제(安帝) 때 거기장군 등질의 천거로 동래군의 태수로 부임하러 갈 때 창읍현을 지나갔다. 당시 창읍현의 현령은 양진이 천거해서 현령이 된 왕밀(王密)이었다. 그 현령이 야밤에 황금 열 근을 품속에 숨겨 양진에게 바치면서 고마운 정을 표했다. 양진이 “나는 그대를 잘 아는데, 그대는 왜 나를 모르는 것인가?” ‘왜 자신의 청빈하고 꼿꼿한 성품을 모르고 이런 짓을 하는가?’ 하고 힐책한 것이다. 왕밀이 민망해 하면서도 “한 밤중이니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고 다시 황금을 들이 밀었다. 이때 그 유명한 말이 양진의 입에서 나온다.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나도 알고, 자네도 아는데(천지天知 지지地知 아지我知 자지子知), 아는 사람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진 왕밀이 부끄러워하며 나갔다.

 

이 대화는 훗날 『몽구(蒙求) 』에 “양진은 하늘과 땅과 나와 너의 넷이 아는 것을 두려워했고, 그의 아들 양병은 술과 재물과 여색의 세 가지 유혹을 버렸다(진외사지震畏四知 병거삼혹秉去三惑)”는 제목으로 실려서 더욱 유명해진다. 두 부자가 모두 태위라는 고관을 지냈지만, 아버지는 강직하게 정치를 하다가 참소를 받아 죽게 되고, 아들은 관대하게 처신을 해서 원만하게 정치를 편 것을 비교한 것이다.

 

양진의 성품이 공변되고 청렴해서 본인은 물론이고 자손들도 항상 고기를 안 먹고 야채를 먹으며 말도 안타고 걸어 다니니, 친구들이 자손의 장래를 위해서 산업을 벌려주라고 충고하였다. 양진이 “후세로 하여금 청백리 자손이라 일컬어지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후손에게 두둑히 남겨주는 것이 아니겠는가?”하며 거부하였다.

 

그가 태위를 거쳐 중상시(中常侍)에 이르렀지만, 당시 황제는 염귀인을 총애해서 그 친척들을 높은 벼슬에 앉히고, 그의 유모인 왕성의 자식들을 귀하게 씀으로써, 환관과 외척이 정치를 좌우하고 있었다. 양진이 여러번 상소를 올려 그들을 물리칠 것을 주청하였지만 오히려 미움만 샀다. 그런데 또 조등(趙騰)이 간언하다 죽게 되자 또 그를 구원하고자 상소를 올리다 귀양가게 되었다. 귀양가면서도 상소를 올리다 죽임을 당하게 되자, 그의 자손과 문인들에게 “죽는 것은 선비의 일상적인 일이다. 내가 임금의 은혜를 입어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간신을 멀리하지 못하게 하였으니, 무슨 면목으로 해와 달을 볼 수 있겠는가? 내가 죽거든 잡목으로 관을 만들고 홑베로 감싸서 무덤도 만들지 말고 제사도 지내지 마라”고 하였다. 올곧고 뛰어난 학자였지만, 성패에 상관없이 간쟁을 하다 죽으니, 나라는 그나마 있던 충신을 잃어 더 어지러워지고 그 자손들도 수년간 숨어 다녀야 하는 고초를 당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이기지 못하면서 나아감이 허물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