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178면류관과 귀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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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더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치러 올 것이다. 초심을 지키지 않으니 흉하다.(익괘 상구효)
임금은 왜 면류관을 쓸까? 명나라 학자 왕응전은 「하늘과 임금은 서로 통한다(天王會通)」는 글에서 “자미원의 중심에 있는 천황성(天皇星)이 밝으면 해와 달이 밝을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임금은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그 총명함을 드러내어 쓰지 않는다. 그러므로 면류로 눈을 가려서 삿된 것을 보지 않고, 옥과 솜으로 된 귀마개로 귀를 막아서 참언을 듣지 않는다. 이 둘은 다 임금의 총(귀 밝음)과 명(눈 밝음)을 감추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면류관의 면류를 늘어뜨리고 귀마개를 하는 것은, 하늘을 본받아 위엄을 세운다는 뜻도 있지만,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발(수렴), 즉 가리개의 역할이 있다는 것이다. 즉 면류는 명을 가리고, 귀마개는 총을 가리는 것으로, 임금이 총명을 드러내면 신하가 설 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한나라 무제 때, 지금의 농수산부장관에 해당하는 대농령 안이(顔異)를 사형에 처한 일이 있었다. 청렴하고 강직한 안이가 무제의 사치에 대해서 직언을 하였다. 무제가 괘씸하게 여기자, 장탕이 무제와 안이의 틈을 보았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시켜 고발하게 하니, 무제가 장탕에게 맡겨 조사하게 하였다. 무제의 조서를 가지고 안이에게 갔는데, 마침 안이가 어떤 사람과 가마를 타고 가며 대화를 하고 있었다. 무제의 조서를 보고 바로 내려와 절을 하고 받아야 하는데, 길도 좁고 가마에서 내릴 분위기도 아니고 해서 망설이면서 할 말을 찾지 못해 입을 삐죽거렸다. 그것을 본 장탕이 “안이가 높은 직책에 있으면서도 임금의 조서를 보고 곧바로 받들지 않고 마음속으로 비난하니 사형에 해당합니다”라고 하였다. 그 후로 속으로 비난하는 것을 처벌하는 판례가 있게 되어, 공경대부가 아첨하며 잘 보이려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임금의 말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고 머뭇거리거나 입을 삐죽거리며 불만의 모습을 보이기만 해도 사형을 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포악은 시대를 이어가며 발전(?)해서, 왕응전의 시대(명나라)에 이르면, 아예 조회 받는 자리에 몽둥이를 비치했다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를 그 자리에서 때려죽이곤 하였다. 그런 강력하고 폭압적인 전제군주 앞에서 어떤 신하가 감히 올바른 간언을 할 수 있겠는가? 황제의 몽둥이질에 의해서 동료가 피떡이 되어 죽는 모습을 본 신하가 어떻게 황제의 눈치를 보지 않을 있겠는가?
그래서 고대로부터 임금에게 면류관을 씌우고 귀마개를 하게 한 것이다. 정식으로 나서서 “폐하! 아니 되옵니다” 하고 간언하는 말만 보고 듣겠다는 뜻이다. 조회를 서는 태도가 불량하거나 혼잣말을 하거나 입을 삐죽거리고 도리질을 하는 등등의 언행은 못 본 체 넘어가겠다는 의미이다. 물론 이런 제도는 한나라 보다 훨씬 이전의 주나라 때부터 있었던 제도이다. 하지만 후대의 임금들은 제도에 담긴 의미는 저버린 체 면류관의 위엄만 좇다가 패망의 길로 가게 되었다. 그래서 역에서는 ‘욕심만 부리면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지고, 그러면 내 것을 빼앗고자 하는 사람이 생긴다. 초심을 지키지 않아서 흉하게 된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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