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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78자연에서 배우는 롯데의 힘겨루기

편집부
2015.08.12·4분 읽기·조회 27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공자께서 困卦 六三효를 풀이하시기를 “곤하지 않아도 될 명예를 욕심내다 곤경에 처했으니 이름이 반드시 욕되고, 거처할 곳이 아닌데 욕심내서 거처하니 몸이 반드시 위태하리니, 욕되고 또 위태해서 죽을 때가 다 되가니,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계사하전 5장] 

 

경상도 상주의 깊은 산촌에 은거하는 선배의 집을 찾아갔을 때이다. 반갑게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에 집안 구경을 나섰는데, 마당 건너 외딴 곳에 커다란 닭장이 있었다. 그런데 그 닭장 안에서 일방적 폭력이 자행되고 있었다. “수탉 한 마리라, 외로워 보여서 오늘 암탉을 스무 마리 사서 넣었더니 저렇게 시끄러워. 수탉이 신참 교육을 시키는 거지.” “아무리 그래도 저건 너무합니다. 암탉들을 열을 지어 두 겹 세 겹으로 포개놓다니. 저것 보세요. 부리에 쪼여서 피나는 머리를 코옥 박고 숨도 못쉬는 것을, 저런 못된 수탉같으니…!” “놔두어라. 지네들끼리 힘겨루기 하다가 서열이 정해지면 언제 그랬냐 싶은 거야. 아! 글쎄 그냥 두래도. 네가 말리면 그때는 잠잠하겠지만, 그 다툼이 더 오래가고, 그러면 다치는 암탉만 늘어날 뿐이야.”

 

더 참견하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이튿날 다시 가보니, 선배 말대로 수탉을 중심으로 질서가 잡혀있었다. 어제의 피 터지는 일방 폭행은 사라지고 평화(?)가 온 것이다. “자연의 세계는 그래. 힘겨루기 끝에 서열이 매겨지면 강한 자가 리더가 되고 약한 자가 따른다는 질서 속에서 안정을 찾게 되지. 네가 참견을 해서 힘겨루기가 끝나지 않으면, 주제를 파악하지 못한 암탉이 수탉에게 덤비다가 크게 다치게 돼. 어설픈 참견이 오히려 약자를 다치게 하는 거지.”

 

선배의 부연설명이 아니더라도 자연의 법칙은 냉정할 정도로 명확하다. 어제는 너무 가까운데서 봐서 나도 모르게 흥분한 것이다. 사람도 그렇다. 다만 사람은 이런 생존 본능 외에도 ‘내가 더 잘 할 수 있어. 내가 해야만 잘 처리할 수 있어.’하는 명예욕과 리더가 되고 싶은 욕구가 더해지기도 하고, 도덕을 체득해서 양심을 기른 결과 양보와 타협을 방법으로 쓰기도 한다.

 

조선시대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켜 스스로 왕이 된 것은 힘으로 질서를 잡은 것이고, 그의 세 왕자 중에 첫째와 둘째가 양보를 해서 충녕대군이 왕이 되게 한 것은 양보와 타협의 산물일 것이다. 물론 새로운 질서를 잡을 때 도덕적으로도 좋은 방법이었으면 좋겠지만, 상황이 꼭 그렇게만 굴러가는 것은 아니다. 각자 자신이 적임자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고, 또 그런 착각을 하도록 부추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필자 같은 객꾼이 책임도 지지 않으면서 도와주는 것처럼….

 

또 적임자가 아닌데도 힘겨루기에 얼른 순응하지 못하면 다치고 죽게 된다. 심지어는 사마씨의 진나라처럼 100여 년을 내전을 치르다가 망하기까지 한다. 적임자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 힘겨루기가 계속될 것이고, 그 결과 당사자들 뿐 아니라 그 집단을 망치는 것이다. 롯데의 힘겨루기를 보면서 ‘자신의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면 욕되고 위태해서 죽게 된다.’는 易의 가르침이 떠오르면서, 동시에 제3자의 어설픈 참견이 없어야 할텐데 하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