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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81타산지석의 마음이 소중하다

편집부
2015.09.25·4분 읽기·조회 12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우레가 흩어져서 눈을 두리번 거림이니, 가면 흉하니, 우레가 자기 몸에 맞지 않고 그 이웃에 맞았을 때 두려워해서 조심하면 허물이 없으리니, 친근했던 사람은 원망하는 말이 있으리라.[震卦 上六]

 

세종대왕의 업적은 이루 셀 수 없지만 그중 천문에 대한 기여는 눈부시다. 경복궁에 간의대를 만들고, 그 안에 규표·혼상(천구의)·혼천의·혼천시계(혼천의와 시계를 연결해서 하늘의 별 운행과 시간을 함께 알 수 있는 천문시계)를 설치하면서, 세자와 함께 매일 밤 천문을 관찰하는 것을 일과로 삼았다. 이 간의대에 설치된 천문기구들은 대왕이 직접 명령을 내려서 서울의 위도(38.25°)를 바탕으로 제작된 것으로 세계 최고수준이었다. 또 “때가 되면 저절로 북 치고 저절로 운행하는 것이 마치 귀신이 시키는 듯하여 보는 사람마다 놀라고 이상하게 여겼다….”(『세종실록』)고 한 흠경각을 경복궁의 침전 옆에 설치했는데, 우주를 본뜬 작은 모형을 만들어서, 해의 출몰과 사계절의 운행을 동작하게 하고, 선녀들과 12신장이 나와서 북 치고 징 치고 춤추면서 시간을 알려주는 전자동 우주변화 물시계를 만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지금의 교보빌딩자리에 앙부일귀를 설치함으로써 세계최초의 공중시계를 자랑하였고, 밤에도 시각을 알기 위해 물시계와 별시계를 만들어서 경복궁과 전방의 요충지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그런 대왕에게 “꼬리의 길이가 5~6척이나 되는 혜성이 동쪽의 천시원과 미수영역에 나타나더니, 열흘 이상을 머물렀습니다.”라고 하는 서운판관 신희의 보고는 청천벽력이었다. 천시원은 임금과 임금의 친척에 관한 일 그리고 시장의 물가를 살피는 역할을 하는 곳이다. 또 미수와 기수 영역은 만주와 우리나라에 해당된다고 알려져 왔다.

대왕은 황보인・정인지 등등 원로들을 불러서 “지금 혜성이 현도와 낙랑의 영역에 나타났다 하니 재앙을 면할 방법을 강구하고, 아울러 기도를 올려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일관이 미수와 기수는 연나라에 영향을 주므로 우리와 상관이 없다고 하자, “연나라와 우리나라는 한 뿌리에서 나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을 모르는가? 또 우리나라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재앙이 사라지도록 기도를 하는 것이 무슨 잘못이 되겠는가!” 하였다. 신하들이 “지금 시급히 해야할 일은 백성을 편히 쉬게 하고 군사를 양성하는 것입니다.”라며 반대하자, “알았다. 단지 마음속으로 조심하고 반성하며 지내겠다.”고 물러섰다.

당시 대왕은 고혈압과 당뇨에 이은 중풍 등으로 몸이 안좋았고, 특히 세자가 많이 아팠다. 그래서 ‘나 아니면 세자가 죽을 것이다’라고 근심하다가 혜성이 뜬 지 석 달 만에 승하하였다. 지금 세상에 천문점을 믿는 사람은 드물겠지만, 지병에 근심이라는 우환이 더해져서 54세라는 젊은 나이에 타계하신 대왕을 생각할 때, 비용을 들여서라도 대왕의 근심걱정을 덜었다면 백성에게 복이 되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더구나 易에서 ‘우레가 이웃을 칠 때 두려워해서 조심하면 허물이 없다’고 하면서 경계하고 조심하는 마음을 강조하였음에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