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기장유림의 활동을 찾아서④ 우봉김씨 덕수당·백산단

백산단 표석


백산단 현판과 덕수당

단소
음력 3월 회일(晦日) 백산단(栢山壇)의 향사일이다. 전일인 양력 4월21일 우봉김씨(牛峯金氏)의 재실을 찾았다. 맑은 날씨라 답사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날이다.
관리실에는 문중의 총무와 총무의 부인이 명일(明日) 향사(享祀)에 올릴 예찬(禮饌)과 경내외 청소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끓여주는 차를 한 잔 마시고 경내외를 둘러봤다. 잘 정돈된 의물(儀物)과 예기(禮器)들의 상태를 보면서 선대를 향한 문중의 여러분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다하고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었다.
우봉김씨 단소(壇所)인 백산단(栢山壇)은 부산광역시 기장군 철마면 백길리182번지에 위치해 있다. 우봉김씨 참찬공파(參贊公派) 익도 김대연(益都 金大連) 공(公)과 공의 현손(玄孫) 무암 김상경(茂菴 金尙涇) 선생을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그믐날(晦日)에 유림제로 봉행하는 단소이다. 덕수당(德修堂)은 백산단의 유림제를 관장하는 집의 당호(堂號)이다.
익도(益都) 공은 을사사화(乙巳士禍)에 연루되어 양산에 적소(謫所)되었다가 후일 복권(復權)된 참찬공파의 파조(派祖) 김계장(金繼長) 공의 손(孫)이다.
익도 공은 송상현(宋象賢) 공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하여 천거되기도 했으며 임란시(壬亂時)에는 동래성 인생문(東萊城人生門)을 지키다 북진하는 왜적을 쫓아 많은 적군을 무찔렀으며 왜장을 꾸짖고 용멸(勇滅)했다.
무암(茂菴) 선생은 익도 공의 현손(玄孫)으로 부사(府使)와 주민들에게 왜인들의 거짓 꾀임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쳤고, 후학(後學)들의 교육에 일생을 바친 분이다. 나라에서 교지(敎旨)를 내려 수직(壽職)으로 가선대부형조참판(嘉善大夫刑曹參判)으로 증직(贈職)됐다.
백산단은 처음에는 백산정(栢山亭)이라 했다. 향리(鄕吏)의 큰 선비이며 항일운동(抗日運動)에 앞장섰던 김수찬(金洙燦), 오덕근(吳悳根), 정인준(鄭寅準), 문용호(文龍鎬) 선생 등이 힘을 모아 1924년 갑자년(甲子年)에 무암수계(務菴修稧)를 모았다.
1932년 임신년(壬申年)에 백산정을 지어 유림제를 모시려 했으나 익도공이 임란시 매적용멸했고 11세 손인 김운일(金運鎰) 선생이 기미년 만세운동 참여자로 항일정신이 투철함을 안 일본(日本) 관헌(官憲)의 방해로 유림제가 무산되기도 했다.
광복 후 가문의 문장(門長)인 정명 김지홍(正明, 金址洪) 외 일가 어른들이 1989년 기사년에 향리 여러분의 승낙을 얻어 사단향문(賜壇享文)에 의거 백산정 후원에 단(壇)을 모아 백산단으로 하고 백산정은 덕수당으로 명명했다.
백산단 제향 시 봉독(奉讀)되는 축문에는 신위에 대한 숭덕(崇德)의 내용이 많으며 백산단 경임록(經任錄)에 따르면 1924년 갑자년부터 향사가 모셔졌다. 단장에 김수찬(김해인, 항일운동), 향유사에 정인준(기장향교 직원) 유림들이 봉사했다.
이렇듯 기장유림들은 추원보본(追遠報本)의 살아있는 정신으로 선대를 모셨으며 그 정신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참고문헌 기장향교지)



![무신사, ‘책상을 탁쳤더니 억하고 말라서’ 카드뉴스 논란 확산 [유교경영리포트]](/uploads/4/legacy/photos/20260521/art_17791935224319_134c6c.jpg)

![[단독] 구리시장 경선판 흔드는 ‘유령 여론조사’... 언론사 명의 빌린 ‘불법 대리 조사’ 의혹 포착](/uploads/4/legacy/photos/editor/2604/20260417081433_gxgnwrel.p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