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 기장유림의 활동을 찾아서⑦ 은진송씨 서호재, 향모사



향모사 현판과 서호재 전경
향모사(鄕慕祠)는 은진송씨(恩津宋氏) 문중의 재실(齋室)로 서호(西湖) 송시호(宋時豪) 공(公)의 위패를 모시고 매 해마다 음력 3월에 유림제(儒林祭)로 올리고 있는 사당(祠堂)이다.
해가 질 무렵이라 그런지 관리사 문이 잠겨있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둘러보며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해마다 향례(享禮)를 올릴 때 찍어 둔 사진들을 참고하며 기장유림활동 일곱 번째를 정리하고자 한다.
향모사(鄕慕祠)는 기장군 정관면 달산리에 있었으나 정관 지역에 신도시가 들어서는 관계로 사우(祠宇)가 헐리게 되는 안타까움이 있었다.
2003년 사우가 없어지면서 새로운 곳에 사당이 복원될 때까지 향사가 이루어지 못해 문중원들의 섭섭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후 장안읍 좌천리 507번지에 2007년도부터 재실 공사를 시작해 2008년 준공하였다. 많은 비가 내리는 가운데 준공식과 더불어 이건한 재실에서 첫 향례를 모셨다. 송원찬 원임 장의가 문중회장(門中會長)으로 재임 중일 때였다. 기장향교에는 김재근 원임 전교, 정정일 시전교가 총무장의, 이방호 시유도회장이 의전장의로 봉직하고 있었다.
서호 송시호 공은 자(字)가 이걸(以傑)이고 호(號)는 서호(西湖)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으로서 충남 대덕군 산내면 사한리에서 출생했다.
사복시판사(司僕寺判事)로 재직 중인 1636년(인조 14년)에 발발(勃發)한 병자호란 중 의병과 군량을 조직하여 악전고투하였으나 남한산성에서의 강화 소식에 벼슬을 스스로 버리고 북향사배(北向四拜)를 드린 후 차성고을로 내려와 대대손손 이곳에 터를 잡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편 서호 선생은 소호정(泝湖亭)을 창건하여 주자학을 강독하였다. 시랑(侍郞) 권적(權樀)과 월천(月泉) 신오(辛澳) 선생(영월신씨 다산단 배향), 공의 6대손인 송관수, 송진수 형제 등 사방에서 운집한 현사(賢士)들이 시서를 강송(詩書講誦)하고, 고지오월지청풍(古之吳越之淸風)으로 시서를 저술(著述)하였으며 교류가 두터웠다고 전해지고 있다.
향모사 경임록(經任錄)을 보면 1980년 경신년(庚申年), 1981년 신유년(辛酉年)에 전주후인(全州後人) 이양재(기장향교 원임 전교) 유림이 단장(壇長), 영월후인(寧越後人) 신인오 유림이 향유사(鄕有司)로 봉직(奉職)하며 유림제로 향사했다.
향모사에 배향된 서호 선생의 학문적 가치관이 훼손되지 않도록 문중의 종원들과 고을 유림들은 춘추대의 청풍고절로 신위에 대한 숭덕의 예가 끊이질 않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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