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87간접 압박도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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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이는 술과 밥에 곤하나, 주불(등용하고자 오는 임금의 행차)이 올 것이니, 제사를 지냄이 이롭다. 나아가면 흉해서 허물할 데 없다. [困卦 九二]
한나라의 세 번째 황제는 문제(文帝)이다. 그는 한나라를 창업한 고조(高祖)의 넷째 아들이다. 고조의 정실인 여후[여치]가 고조가 사랑했던 여인들과 그 자식들을 모두 죽일 때도, 박태후와 그 아들 문제는 죽이지 않고 오히려 대나라의 왕으로 삼았다. 고조가 위나라 왕[위표]을 죽이고 그 부인[박태후]의 미색에 반해 첩으로 삼았지만, 문제가 열달이 채 안 되어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식으로 인정하기도 안 하기도 뭣해서 멀리했던 덕(?)을 본 것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문제에게 외삼촌[박소]은 항상 의지가 되는 든든한 집안의 어른이었다. 어렵고 힘든 때에 목숨을 걸고 문제를 지켜서 훗날 황제에 오르게 한 일등공신인 것이다. 그 인고의 생활이 얼마나 불안했는지, 주발이 여씨 형제들을 몰아내고 문제를 황제로 추대하고자 할 때도, 혹여 거짓으로 유인해서 죽이려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에 떨었다. 그때도 집안의 어른으로서 문제를 대신해서 주발을 만나 그 진위를 타진하고는, 문제에게 “믿어도 좋다”는 결론을 내기도 하였다.
문제도 그런 외삼촌을 믿고 따랐으며, 자신을 보필한 공을 높이 사서 지후(軹侯)로 봉하고 거기장군의 직책을 새로 만들어서 황제의 의전과 경호를 담당하게 하고, 또 적통을 내세우며 문제를 무시하던 고조의 아들과 형제들과의 화합조절을 맡기는 등 중용하였으며, 주발이 역모사건에 엮여 곤욕을 치를 때도 태후를 설득해서 무죄방면이 되도록 돕기도 했다.
박소는 황제를 보호하고 옹립한 공신이자 황제의 살아 있는 생모의 유일한 친동생이라는 인척으로서, 또 황제의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실권자로서의 지위가 확고해지자, 차츰 황제에 대한 예의에 무뎌지게 되었다. 급기야는 황제가 보낸 사신을 죽이는 사건이 벌어졌다. 공을 세웠던 외삼촌! 더구나 외롭게 슬퍼할 모친을 생각해서 차마 직접 죽일 수 없었던 문제는, 대신을 시켜서 박소와 술을 마시게 한 뒤 스스로 자결하도록 유도하였다. 박소가 응하지 않자, 신하들을 시켜 상복을 입고 박소 앞에 가서 곡을 하며 울게 하니, 황제의 확고한 뜻을 읽은 박소가 자살하였다. 비록 박소가 자살하는 형식을 취했지만, 이 일은 후세 사람들로부터 “법을 밝게 밝히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어머니에 대한 효성을 생각할 때 잘못되었다. 애초부터 재물을 주되 권세를 주지 말았어야 했다”는 등등의 평을 들었다.
그렇다면 조계종에 숨어든 한상균 위원장의 처리는 어떠한가? 책임도 못질 사람을 받아들인 것은 문제나 조계종이 같은 잘못을 범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강제로 연행함에 있어서는 모친과 외삼촌을 배려했던 문제에게서 배울 바가 있지 않겠는가? 그저 조계종 밖으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면서, 경내를 출입하는 스님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을 더욱 철저히 검문하며 압박을 가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그래서 역에서는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도와줄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서 정성을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만, 급히 처리하려 하면 탈이 난다’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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