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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群而不黨’무리를 짓지만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

진성수
2020.07.30·4분 읽기·조회 108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씩씩하지만 다투지 않으며, 무리를 짓지만 당파를 만들지 않는다.”(子曰 君子는 矜而不爭하며 群而不黨이니라.「衛靈公」21)

 

삼삼오오(三三五五), 유유상종(類類相從), 초록동색(草綠同色)은 모두 ‘끼리끼리 어울린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어릴 때에는 또래끼리 어울리고, 학창시절에는 동창이나 같은 반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회인이 되어서는 팀이나 부서별로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그것도 모자라서 동아리나 동호회를 만들고, 계모임이나 동창회 등 다양한 모임을 만들어 어울린다. 최근에는 인터넷이나 SNS를 통해 각종 동호회나 동아리를 만들고 있는 추세이다. 따라서 현대인이라면 자이든 타이든 간에 이러한 모임 하나 정도에는 가입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을 실감케 하는 대목이다.

 

‘사람 인(人)’자를 보면, 두 획이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혹자는 이것을 사람이 서로 어울려 살 수밖에 없는 이유로 해석하기도 한다. 물론 문자학적 이해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해석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활동의 결과로 무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모임이나 무리가 학연(學緣)․지연(地緣) 혹은 정치적인 이해로 인해 배타성을 띠게 되면 최초의 의도와는 다르게 변질되기 십상이다. 공자는 특정한 이해와 요구를 중심으로 모인 집단을 당파(黨派)라고 말한다.

 

국가공무원으로 정년퇴직한 어떤 고위 공직자의 고백이 한 때 화제가 됐던 적이 있다. ‘평생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이 무엇이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친분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청탁을 받았을 때’라고 말했다. 특히 과거에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의 청탁을 거절해야만 할 때가 가장 어려웠다고 고백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상시에는 ‘편협한 판단’이나 ‘자기사람 챙기기’ 등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내 가족이나 친지, 내 동창이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대할 때는 자연스럽게 정(情)에 치우치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이처럼 친분과 당파를 초월하여 사람을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공자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진(陳)나라 사패(司敗)가 공자에게 물었다. “소공(昭公)은 예(禮)를 아는 사람입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예를 아는 사람입니다.” 공자가 자리에서 물러나자 사패는 공자 제자 무마기(巫馬期)에게 말했다. “군자는 편을 들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군자도 편을 짓는군요. 임금이 오(吳)나라에 부인을 취했으니 동성(同姓)이기 때문에 ‘오맹자(吳孟子)’라 부르게 된 것이니, 이러한 임금이 예를 안다면 누가 예를 알지 못하겠습니까?” 무마기가 이 말을 공자에게 전하니, 공자가 말했다. “나는 다행이로다. 허물이 있으면 남이 반드시 아는구나!(술이-30)”

 

당시 노나라 임금 소공은 오나라에서 부인을 맞이했다. 노나라와 오나라 임금은 모두 희(姬)씨 성(姓)을 가진 먼 친족관계였다. 당시 노나라의 예에 따르면, 같은 성씨를 가진 사람은 절대 혼인할 수 없었다. 또한 당시 왕비의 호칭을 정하는 법에 보더라도, 왕비의 이름을 ‘오나라에서 시집온 희씨’라는 뜻으로 오희(吳姬)라고 불러야 했다. 그러나 소공은 동성(同姓)임을 감추기 위해 오맹자(吳孟子)라고 불렀다. 사패는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는 다른 나라 사람 앞에서 모국의 임금을 차마 흉볼 수가 없었다. 이 또한 공자가 생각하는 중요한 예(禮)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중에 사패의 지적을 듣고 공자는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하며 모든 잘못을 자신에게로 돌렸다. 이 또한 공자의 군자다운 면모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무리지어 살면서 당파를 만들지 않기란 공자도 그랬듯이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자는 기본적으로 “두루 사귀되 파벌을 만들지 않는다.(「위정」14)”는 입장에 있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