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字論語> ‘有敎無類’ 가르침은 있으나 종류에 대한 차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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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가르침은 있으나 종류에 대한 차별은 없다.”(子曰 有敎면 無類니라.「衛靈公」38)
공자에게는 약 3천 명의 제자가 있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장관에 해당하는 대부(大夫)도 있었지만, 평민과 천민도 있었다. 예컨대 자공(子貢)과 염유(冉有)는 대단한 권세와 부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안회(顏回)는 매우 가난한 사람이었다. 또한 자로(子路)는 공자보다 9세 연하였지만, 안회의 아버지인 안로(顏路)는 공자보다 6살이 많았다. 이처럼 제자들의 스펙트럼이 넓었던 사람이 바로 공자이다. 이렇게 다양한 제자들을 가르칠 수 있었던 공자의 교육철학은 과연 무엇일까? 공자의 교육관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화가 있다.
공자 당시 호향(互鄕)이라는 마을이 있었다. 그 마을은 예로부터 악한 풍속의 영향을 받아 사람들도 모두 악한 습관에 찌들어 사는 곳이었다. 그래서 당시 그곳 사람들과는 전혀 상종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호향에 사는 한 소년이 공자를 찾아왔다. 공자는 그 소년을 흔쾌히 맞아 주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크게 동요했다. 왜냐하면 그 곳 사람들과 말을 섞지 않는 것이 당시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의 이런 의문을 공자가 몰랐을 리 없다. 그래서 공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사람이 몸을 깨끗하게 하여 나오면 그 청결함을 인정하고 과거에 했던 일에 대해 집착해서는 안 된다.”(「술이」28) 이 말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고 배우러 오는 사람에 대해서는 그 정성을 보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공자가 과거의 잘못을 모두 용납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그 진실한 마음을 보고 가르친다는 뜻이다. 즉 현재의 일을 가지고 사람을 평가하는 것이지 과거의 잘못으로 개선의 가능성마저 구속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잘못이 있다고 해서 그를 악한 사람으로 낙인찍어 그의 미래를 모두 부정하고 무시한다면, 이 세상에 무시당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겠는가?
공자의 교육관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이 한 구절 더 있다. 공자는 제자를 받아들이는 기준에 대해 “속수(束脩)의 예(禮)를 실행한 자로부터 그 이상은 내가 일찍이 가르치지 않은 적이 없다.”(「술이」7)라고 말했다. 속수란 육포 10장을 말하는데, 공자 당시 스승이나 어른에게 인사를 드릴 때 들고 가는 가장 약소한 예물이었다. 공자의 교육은 돈을 벌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따라서 공자는 기본적인 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가르침을 주었다. 즉 가르침은 예에서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예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오바마의 성공담은 전 세계에 미국이 기회의 나라임을 입증해 주었다. 그러나 그 이면을 살펴보면, 교육의 위대함을 볼 수 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어머니의 재혼과 하와이와 인도네시아 등을 떠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 그리고 흑인으로서의 열등감과 약물 중독 등. 이런 개인적인 고난을 지켜준 것은 다름 아닌 교육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교육이 없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탄생은 불가능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은 훌륭한 인격과 재능을 갖추는 것이다. 따라서 빈부와 귀천에 따라 차등을 두어서는 안 된다. ‘유교무류’는 바로 이러한 평등한 교육기회를 강조하는 공자의 교육철학을 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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