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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生而知之’ 태어나면서부터 안다

진성수
2020.12.13·4분 읽기·조회 51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자가 최상이고, 배워서 아는 자가 그 다음이고,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우는 자가 또 그 다음이니, 어려움을 겪으면서 배우지 않으면 백성으로서 최하가 된다.”(孔子曰 生而知之者는 上也오 學而知之者는 次也오 困而學之가 又其次也니 困而不學이면 民斯爲下矣니라.「季氏」9)

 

사람은 ‘된 사람’, ‘든 사람, ’난 사람’ 있다고 한다. ‘된 사람’이란 인격이 훌륭한 사람, ‘든 사람’은 똑똑한 사람, ‘난 사람’은 잘난 사람을 뜻한다. 이 중에 무엇이 가장 우선이냐고 물으면, 많은 사람들이 ‘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 자식을 기르는 학부모 입장에서 물어보면, 자기 자녀가 우선 ‘든 사람’이나 ‘난 사람’이 되기를 더욱 바란다. 무한경쟁의 시대에는 훌륭한 인격도 중요하지만, 공부 잘해서 좋은 학벌을 갖추는 것이 세상 살기에 편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것으로부터 오늘날의 교육 문제가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공자는 사람의 수준을 생이지지자(生而知之者), 학이지지자(學而知之者), 곤이학지자(困而學之者), 곤이불학자(困而不學者) 4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생이지지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다. 음악가나 화가처럼 천재적인 예술가들이 애초부터 배우지도 않고 천재성을 발휘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불교의 석가모니, 기독교의 예수와 같은 종교적인 성인(聖人)이나 신(神)의 아들도 마찬가지이다. 공자는 이런 사람을 최고 등급으로 보았다.

 

둘째, 학이지지자는 ‘배워서 아는 사람’이다. 공자 당시 제자들은 자신들의 스승을 성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제자들에게 경계하며,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 것을 좋아하여 부지런히 찾아 배운 사람이다.(「술이」19)”라고 말한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이 결코 성인이 아니며, 단지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인임을 자처하지 않았던 공자는 제자들에게 성인이 되는 방법, 즉 군자의 길[道]을 가르치고 있다.

 

셋째, 곤이학지자는 ‘어렵사리 고난을 통해 배우는 사람’이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처럼 그야말로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자기 능력의 한계를 깨달으며 배운 사람을 말한다. 이런 사람은 학이지지자의 수준보다는 조금 아래지만 일단 본인이 높은 수준에 오르게 되면, 자신의 고통을 밑천 삼아 타인을 잘 가르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넷째, 곤이불학자는 ‘고난을 통해서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실패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경우가 많다. 사소한 실수가 큰 실패의 원인이 될 경우, 사람들은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또 결심한다. 그러나 곤이불학자는 자신의 실패를 통해서도 전혀 배울 생각이 없거나 혹은 배우지 못하는 수준 낮은 사람이다. 그야말로 구제불능인 것이다. 공자는 이런 사람을 최하등급으로 보았다.

 

공자는 자신에 대해 “열 집이 사는 작은 마을에 충신(忠信)이 나와 같은 사람은 있을지 모르지만,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공야장」27)”라고 자부한다. 이 말은 공자 자신이 생이지지자가 아님을 밝히는 동시에 자신을 호학(好學)하는 사람으로 설명하고 있는 대목이다. 이처럼 공자는 자신을 생이지지하는 성인이 아닌 학이지지하는 인간 공자로 생각해 주기를 원했다.

 

공맹 유학에서 말하는 이상적인 인격은 성인이다. 그러나 성인은 0.1%의 잘못도 흠도 없는 완전한 존재이다. 따라서 보통 사람들처럼 일상생활에서의 학문과 수양이 필요 없다. 공자는 바로 이 점에 주목했다. 인간은 누구나 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인간은 하루하루 생활하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깨닫고 수양해 나가야 하는 존재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생이지지자가 아닌 학이지지자의 모범으로서 자신의 인생을 여실히 보여주기를 원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