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賢들의 멋이 깃든 亭子이야기 (12)영주 봉서루(鳳棲樓), 영남(嶺南) 누정의 으뜸으로 꼽아


봉이 깃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봉서루. 고려 말 홍건족이 침략하자 공민왕은 부득이 몽진(蒙塵)을 결행하여 순흥으로 내려왔다. 봉서루 현판은 공민왕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봉과 관련된 일화가 많으니, 누정 뒤쪽에 영봉루(迎鳳樓)가 적혀 있고, 오동나무를 심고 여러 개의 둥근 바위가 봉의 알처럼 남아 있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 유서 깊은 누각이 있으니 봉서루(鳳棲樓)이다.
고구려 때 급벌산군(及伐山郡), 신라 경덕왕(景德王)이 급산군(岌山郡)으로 고쳐 불렸다가 고려 초에는 흥주(興州)로 고치고 현종(顯宗)은 안동부(安東府)에 귀속시켰다가 순안현(順安縣)으로 이속시키고, 명종(明宗) 때 감무(監務)를 두었다.
충렬왕(忠烈王) 충숙왕(忠肅王) 충목왕(忠穆王)의 태(胎)를 각각 안치하여 흥녕현령(興寧縣令) 지흥주사(知興州事) 흥주(興州)로 승격시켰다. 조선 태종(太宗) 때 도호부(都護府)로 고치고, 세조(世祖) 때, 풍기군(豊基郡)에 혁속(革屬)시켰다.
안축(安軸)의 기문(記文)에 “나라의 동남쪽에는 본래 산은 하나인데 고개[嶺]는 세 개이니, 태백(太白)ㆍ소백(小白)ㆍ죽령(竹嶺)이 그것이다. 영남(嶺南)에 뿌리박은 첫째 고을은 바로 우리 흥주(興州)이다”라고 적혀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영험한 산악을 바라보고, 남쪽으로는 무성한 수림을 마주보며, 동쪽으로는 푸른 개울에 닿고, 서쪽으로는 너른 들을 누르고 있는 것이 정자이다”라고 기록했으니 봉서루는 고을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리학을 소개하며 발전에 기여한 안향(安珦) 선생이 순흥 출신이다. 훗날 주세붕 선생이 풍기군수로 부임하여 선생을 숭모하여 서원을 건립했으니 바로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이다.
이색(李穡)선생은 “순흥안씨(順興安氏)는 세세로 죽계(竹溪)에 살았다. 죽계의 근원은 태백산(太白山)에서 나온다. 산이 크고 물이 멀리 흐르듯, 안씨의 흥성함도 끝이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서거정(徐居正) 선생도 “소백산이 태백산에 이어져, 서리서리 백 리(百里)나 구름 속에 꽂혀 있네”라고 하여 이곳의 수려한 풍광은 가히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관동별곡(關東別曲)과 죽계별곡(竹溪別曲)을 지은 안축(安軸) 선생은 고려 충숙왕(忠肅王) 11년에 원 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하여 문명을 떨쳤다.
당시 충숙왕(忠肅王)이 원 나라에 있을 때 “임금이 근심하면 신하는 욕을 당하고, 임금이 욕을 당하면 신하는 죽음을 당하는 것이요”라며 상서(上書)했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다. 상주(尙州)에 목사(牧使)로 부임했을 때 자주 이곳을 왕래하며 효도를 다했다.
혹자가 “이 누정은 산수(山水)에서 그 위대함을 얻었거늘 오히려 사람들에게 버림당하여 거의 부수어 질 것 같지만 저 깊은 절벽에 왜소한 것은 오히려 사람들이 받아들이니, 참으로 괴이한 일이다”라고 묻자 안축은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큰 사람은 그 위대함을 보고 그 왜소함을 알지만, 마음이 작은 사람은 왜소한 것에 매여서 위대한 것을 잊어버린다. 공자는 동산(東山)에 오르고는 노(魯) 나라가 왜소하다고 했고, 태산(泰山)에 오르고는 천하(天下)가 왜소하다고 했는가. 사람이 이것을 버리고 저것을 취하는 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누정이 버림받은 것은 누정의 죄가 아니라 이를 보는 사람의 마음이 작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치는 성패에 때가 있으니, 이 누정은 마땅히 다시 새로워질 날이 있을 것인데, 무엇 때문에 부서질 것을 근심하리오.”
얼마 후 안축 선생이 개성으로 올라올 때 직랑(直郞) 채상(蔡祥)이 지사로 부임하여 누정에 올라 산수를 보며 즐거워했으나 누정의 퇴락함을 탄식했다. 곧 장인에게 명하여 다시 지어 새롭게 하였으니, 규모가 크고 채색이 고왔다.
봉서루는 밀양의 영남루(嶺南樓)와 진주의 촉석루(矗石樓) 등 영남의 대표적 누대(樓臺) 가운데 이와 훌륭함을 견줄 것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기문에 “지방관이 이곳에 올라 손님을 마중하고, 농사를 살피며, 일의 빠르고 늦음,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문책하여 상벌(賞罰)을 내렸으니 백성들은 스스로 권면하여 앞다투어 근면하게 되어 예의가 넘치고 일이 편안하게 되어 누정의 공덕이 아닐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봉서루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박광영 / 성균관 의례부장
<편집자 주 : 제833호(2012년 10월1일)부터 시작한 '선현들의 멋이 담긴 정자이야기'를 다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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