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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日知所亡’ 날마다 없는 것을 안다

진성수
2021.04.28·4분 읽기·조회 29


 

진성수 / 전북대 철학과 교수

 


 

자하가 말하였다. “날마다 그 없는 것을 알며, 달마다 그 능한 것을 잊지 않으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다.”(子夏曰 日知其所亡하며 月無忘其所能이면 可謂好學也已矣니라.「子張」5)

 

‘배운 것을 익히다’는 뜻의 ‘습(習)’자는 ‘날개 우(羽)’와 ‘일백 백(百)’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익힌다’는 것은 어린 새가 수백 번 날개를 퍼덕이듯 지속적으로 연습하는 것을 의미한다. 『논어』의 첫 구절에서 공자는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학이」1)”라고 말하며 배움과 익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제임스 레그(James Legge: 1815-1897)가 번역한 『논어』의 영역본인 『CONFUCIAN ANALECTS』에서도 “Is it not pleasant to learn with a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이라고 번역하고 있다. ‘constant perseverance and application’은 ‘끊임없는 인내와 적용’으로 해석된다. 결국 진정한 배움이란 끊임없는 인내와 배운 것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얻어진다는 뜻이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작은 고을에 충(忠)과 신(信)이 나와 같은 사람은 있겠지만, 내가 학문을 좋아하는 것만은 같지 못할 것이다(「공야장」27)”라고 말하며 자신을 호학(好學)하는 사람으로 묘사하고 있다. 호학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으며, 일에는 민첩하고 말은 삼가며, 도(道)가 있는 데 나아가 스스로를 바로잡으면 배움을 좋아한다고 말할 만하다(「학이」14)”라고 말한다. 이는 ‘의식주의 기본적인 욕구를 절제하고 배운 것을 부지런히 실천하면서도 말은 조심하고 스스로를 반성하여 흐트러지지 않게 하는 것’이 호학이라는 것이다.

 

그럼 공자의 제자 중 호학을 실천한 사람은 누구일까? 노나라 제후 애공(哀公)과 공자의 대화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제자 가운데 누가 호학합니까?”라는 애공의 질문에 공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안회라는 사람이 배우기를 좋아하여 노여움을 옮기지 아니하며 허물을 두 번 하지 아니하더니 불행히도 명이 짧아서 죽었기 때문에 이제는 없으니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에 대하여 듣지 못하였습니다「옹야」2).”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자신의 노여움을 다른 곳으로 옮기지 않고, 같은 잘못을 두 번 하지 않는 것’이 호학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호학은 단순히 책을 통해서만 얻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실천함으로써 증명된다는 점이다. 둘째, ‘안회가 세상을 떠난 이후 현재는 호학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자신의 호학을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음을 안타까워했음을 보여준다. 공자의 안타까움은 노나라 대부(大夫) 계강자(季康子)의 “제자 중에 누가 학문을 좋아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선진」6).

 

공자의 이런 속마음을 잘 알고 있던 자하는 ‘날마다 자신이 모르는 것을 배우며, 달마다 배운 것을 잊지 않는 것’이 호학이라고 말한다. 이는 배움과 익힘을 강조한 것이다. 호학이란, 자신의 무지(無知)를 깨닫고 학문(學問)을 통해 모르는 것을 깨닫는 것과 이미 얻은 지식을 끊임없이 반복하여 실천하는 과정을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다. 만약 어렵사리 배워서 무엇을 안다고 하더라도 얼마 후에 그것을 다시 잊어버린다면 이것은 진정한 호학의 자세가 아니다. 따라서 매일같이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그것을 배우는 데에 힘쓰며, 매월 혹시라도 잊고 지내는 것이 없는 지 스스로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