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218장유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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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호랑이 꼬리를 밟더라도 사람을 물지 않으니, 형통하다.(리괘 괘사)
요즘 들어 장유유서가 뜨거운 감자가 되어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장유유서를 말 그대로 번역하면 어른과 아이는 차례가 있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의 차례는 ‘어른 먼저, 아이 나중’이다. 그래서 ‘아이’ 입장에서 보면 여러 가지로 불리한 가르침이라고 반발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유유서는, 예로부터 내려온 미풍양속이라는 이름으로 별 거부감 없이 지켜 왔던 예절이다. 늙도록 살 수 있는 것은 착하게 살았기 때문이라고 하며 노인을 공경하였으며, 직장에서는 오래 근무한 사람에게 월급을 더 주고, 지위를 더 높여주며, 책임과 권리를 더 주었다. 새로운 문물이 적어서 사회변화가 느렸던 시대에는, 경험이 많은 연장자의 가르침이 거의 절대적이었기 때문이다. ‘연장자가 더 잘한다’는 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왜 꼭 어른에게 우선권을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궁색해졌다. ‘어른’이 더 잘하기에는 세상이 급격히 변화하기 때문이다. ‘어른’이 배우고 경험한 것을 제대로 써먹지도 못했는데 낡은 지식이 되고 만다. 오히려 젊은 사람이 더 빨리 지식을 습득하고 활용을 해서 사회를 이끌어 간다.
휴대폰이나 컴퓨터 등 새로운 문명기계를 ‘어른’이 더 잘 다룰까? 직장에서는 신입사원들의 불만이 많다. 자기보다 2배나 더 많은 월급을 받는 부장님에 대한 불만이다. 휴대폰도 제대로 다룰지 몰라서 “이것 좀 해달라”고 부탁을 하고, 새로운 사양의 컴퓨터를 운용할지 몰라서 또 부탁을 한다. 몰라서 부탁을 하는 처지에 배워둘 생각은 않고, 다음에 또 부탁을 한다. 배우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배울 능력도 부족하다. 그러면서 무슨 부장이야?
부탁하고 배우는 사람은 머리를 숙이고 공손해야 한다. 그런데 부탁하는 ‘어른’이 공손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요즘 ‘아이’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 모르고, 회사가 바쁘더라도 상관 않고 퇴근한다. 전체를 배려할 줄 모른다고 불만이다. 반면에 ‘아이’는 ‘무능력하면서 대접만 받으려고 하는 꼰대’라고 하면서 ‘어른’을 무시하며 대접을 안 한다. 내 일만 잘하면 됐지 내가 왜 무능한 부장의 뒤치다꺼리를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요즘같이 재택근무를 하며 서로 떨어져서 일을 할 때는 더욱더 ‘어른’의 능력이 모자라 보인다. 길을 가면서도 이메일에 담긴 문서의 내용을 꺼내 확인해야 하고, 화상회의를 할 때도 카메라와 마이크를 능숙하게 다뤄야 한다. 비대면시대의 무기인 인터넷에 익숙해야 하는 데 잘 하지 못한다. 능력에서 밀리고 환경적응에서 밀린 ‘어른’은, “너희들은 안 늙을 줄 아냐?”고 화를 낸다.
사실 장유유서는 유교의 여러 가르침 중에서 가장 평등한 가르침이다. 누구나 언젠가는 ‘어른’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 이유가지고 요즘 ‘아이’들의 존경하는 마음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하다.
‘어른’은 ‘아이’의 빠른 적응력과 개인주의적 사고를 존중하며, ‘아이’는 ‘어른’으로서의 지위와 전체를 볼 줄 아는 능력을 존중하는 것은 어떨까? 서로가 서로를 아끼며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것을 알면, 상대방의 실수나 단점은 그냥 봐 넘길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역에서는 “능력 있고 힘이 센 사람에게 실수를 했는데도 보복을 당하지 않는 이유는, 그 사람을 좋아하며 따르다가 잘못한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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