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219송양공의 줏대 없는 양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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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육은 회복하는데 헤맴이라 흉하다. 재앙이 있어서 군사를 움직이면 마침내 크게 패하고, 나라를 다스리면 임금이 흉해서 십 년에 이르도록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복괘 상육)
송나라 양공(襄公)은 도덕적으로 우수하면서도 강성했던 은나라의 후손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해서 양보를 미덕으로 알았다. 그가 송나라의 태자가 될 때도 이복형인 목이(目夷)에게 양보하였다. 자신 보다 덕과 능력에서 앞서는 목이가 임금이 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왕(환공)이 적자인 네가 임금이 되어야 나라가 편안하다고 하자 슬며시 태자가 되었다. 임금이 되었을 때는 목이를 재상에 임명함으로써 형제간의 우애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목이의 말을 듣지 않고 독선을 부렸다.
임금이 된 지 12년 만에 제후들의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하였다. 목이가 “송나라가 강대국인 제나라와 초나라를 제쳐두고 맹주가 되는 것은 분수에 맞지 않다”고 하였지만 “초나라가 적극 도와주기로 했다”고 하면서 듣지 않았다. 하지만 초나라가 도와주는 척 하다가 기습을 해서 송양공을 포로로 삼았다. 다른 제후국들이 연합해서 힘을 쓴 덕분에 간신히 풀려나왔지만 맹주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체면이 깎인 양공이 자신을 추종하는 제후국들과 함께 초나라와 긴밀한 우호관계를 맺고 있는 정나라를 침공하였다. 마음 같아서는 초나라를 침공하고 싶었지만 초나라는 너무 강한 나라였기 때문에 정나라로 대신한 것이다. 이를 안 초나라가 가만있을 리가 없었다. 군대를 모아서 송나라를 공격하니, 두 나라의 군대가 홍(泓)이라는 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게 되었다.
강을 건너오는 초나라의 대군을 보고 목이가 “상대 군사는 많고 우리 군사는 적으니, 지금이 초나라 군사를 공격할 때입니다. 병법에 적이 강물의 반을 넘었을 때 공격하라고 하였습니다” 하였지만 양공이 허락하지 않았다. 초나라 병사가 강을 거의 건넜지만 아직 전열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목이가 다시 “적군이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지금이 공격할 때입니다” 하였지만 역시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초나라 대군에 의해 형편없이 패배했고, 양공도 허벅지에 화살을 맞고 간신히 살아남았는데, 이 상처 때문에 이듬해 죽게 되었다. 후세 사람들이 이 사건을 비웃으며 ‘송양지인宋襄之仁(송나라 양공의 어리석은 어짊)’이라고 하였다.
목이가 “어째 공격을 허락하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힐난하자, “군자는 상처 입은 적군을 공격하지 않고,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노병은 죽이지 않는다. 내가 비록 망한 나라의 후예이나, 상대가 전열을 가다듬지 않았을 때는 공격의 북을 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군자는 그럴까? 그렇지 않다. 요임금, 순임금, 탕임금, 무왕 등 성인으로 추앙되는 임금들도 전투에 임해서는, 항복한 자를 살려주었지 복종하지 않고 대항하는 자를 불쌍하다고 살려준 적이 없었다. 군자의 인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덕이 있는 자가 임금이 되고 맹주가 되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덕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슬그머니 임금이 되었고, 초나라와 같은 강대국을 포용하지 못해서 화를 입었고, 회맹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등나라의 임금을 체포하고 늦게 왔다고 증나라 임금을 삶아 죽여 제물로 바치는 등 약소국을 품어줄 덕이 없는데도 맹주가 되려는 욕심을 부렸다. 어찌 망하는 길이 아닌가?
그래서 역에서는 ‘덕을 제대로 기르지 못했는데도 윗사람이 되면 흉하다. 마음에 안 든다고 화를 내면 낼수록 자신을 망치고, 높은 사람이라면 회사나 나라나 할 것 없이 다 망하게 할 뿐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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