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옛터功臣의 위세 간데없는 충훈부 터
인사동 입구 구석에 작은 표지석이 무심하게 서있다. 지나가는 이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2013년 오늘날 왕조의 친위세력이었던 공신들의 위세는 작은 흔적으로 만 남아있다.
이곳이 조선시대에 나라에 공을 세운 공신이나 그 자손을 대우하기 위해 설치하였던 관청인 충훈부 터임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국가와 왕실을 위하여 공을 세운 사람에게 준 칭호, 또는 그 칭호를 받은 사람이다.
조선시대 공신들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들은 왕과 회맹(會盟)하여 나라에 충성을 다할 것과 자손 대대로 서로 친목할 것을 맹세하였다.
또한 왕은 교서를 내리고 입각화상(立閣畵像)으로 그 명예를 세전(世傳)하였으며 왕은 공을 세운 정도에 따라 등급을 나누어 영작(榮爵)과 토지 ·노비 등을 주고 그 자손에게도 음직(蔭職)을 주었다. 조
선시대 공신은 1392년(태조 1)의 개국공신, 1399년(정종 1)의 정사공신(定社功臣), 1401년(태종 1)의 좌명공신(佐命功臣), 1453년(단종 1)의 정난공신(靖難功臣), 1455년(세조 1)의 좌익공신(佐翼功臣), 1467년(세조 13)의 적개공신(敵愾功臣), 1469년(예종 1)의 익대공신(翊戴功臣), 1474년(성종 5) 좌리공신(佐理功臣), 1728년(영조 4)의 분무공신(奮武功臣)에 이르기까지 28종에 달한다.
개국 초에는 공신도감(功臣都監) 또는 충훈사(忠勳司) 등으로 부르다가 세조 때 충훈부로 고쳐 당상관(堂上官)인 군(君)과 경력(經歷:종4품) ·도사(都事:종5품)의 관직을 설정하였다.
초기에는 당상관의 정원에 제한을 두지 않았으나 후기의 <대전통편(大典通編)>에 이르러 정원을 3명으로 정하고 친공신(親功臣)으로써 이를 임명하되 친공신이 없으면 이를 승습(承襲)한 군(君)으로써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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