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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27자정자가 뭐꼬?

윤상철
2021.10.14·4분 읽기·조회 47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군자는 공경함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리로써 언행을 방정하게 해서, 공경과 의리가 바로 서면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곤괘 육이 문언전).

 

명나라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그의 형과 조카들이 일찍 죽는 바람에 17세의 어린 나이에 황제가 되었다. 이치적이고 체계적으로 상황을 잘 판단했고 정치도 잘 했지만, 시기심이 많아서 유능한 정치가나 장군을 제거하고 죽였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고 한다.

 

그가 아직 소인의 학문을 공부할 때 “정자를 자정자(子程子)라고 한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황제가 그것도 모르냐면서 “ ‘자(子)’는 존경해서 부르는 글자입니다”고 강학관이 비웃듯이 답했다. “그런데 왜 공자에게는 ‘자공자(子孔子)’라고 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는 그만 강학관의 말문이 막혀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주자(朱子)가 60세에 쓴 『대학장구』 서문과 『중용장구』 앞주에 “자정자 왈(子程子曰)”이라고 쓴 것에 대해서 의문을 가진 것이다. 유학의 종사이고 만고의 스승이신 공자님께도 한 번 밖에 안 쓴 존칭어 ‘자’자를, 정자에게는 두 번이나 쓴 이유에 대한 질문이다. 더구나 두 번이나 쓴 주자는 성리학을 집대성하고 예법에 밝은 학자가 아닌가? 그런 그가 정호(명도)와 정이(이천) 형제를 부를 때 ‘정선생’도 아니고 ‘정자’도 아닌 ‘자정자’라고 부른 것이다.

 

강학관은 “주자가 정자를 더 존경하며 높여 부른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어리다고 하지만 황제가 그것도 모르는가?” 라고 비웃었지만, 공자에게도 안 쓴 두 개의 ‘자’자를 정자에게 쓴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강학관의 말대로라면, ‘주자가 공자 보다 정자를 더 존경하였다.’는 가설이 성립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주자뿐만 아니라 다른 유학자들도 ‘공자’ 앞에 ‘자’자를 더 붙인 예가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정자’라고 쓴 것이 ‘정자’를 더 높여서 부른 것이라는 해석은 잘못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자신의 스승’ 또는 ‘자신이 추구하는 학파의 스승’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자’자를 앞에 더 붙여서 ‘자정자, 자심자, 자범자’ 등으로 쓰고, 혹은 ‘나 오(吾)’자를 앞에 써서 ‘오부자(吾夫子)’라고 쓴다. 성씨 앞에 ‘자’를 더 붙이는 것은 ‘나의 스승, 내가 존경하는 스승이 될 만한 분, 사숙을 해서 나의 학문의 연원이 될 만한 분’일 때의 호칭이므로, 주자가 정자에게 직접 배우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학문의 연원이 되는 스승으로 생각한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주자는 주자(주돈이)의 저서와 이정자(명도, 이천)의 저서에 주석을 달아 출간하고, 자신의 학관에 주자의 위패를 모시고, 이정자를 배위해서 예를 갖추는 등, 세 분 선생에 대한 예가 극진하였다. 더구나 24세에 이정자의 재전제자인 이통(李侗)에게서 배웠으므로, 이정자에 대한 예가 더욱 극진했다.

 

공자님이 “예가 아니면 설 수 없다”고 하신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있어서 예절이 기본이 된다는 뜻이고, 위나라에서 정치를 하려고 하실 때 “이름을 바로 세우는 것이 우선이다”고 하신 것은 “이름을 바르게 하면 이치에 맞는 말을 할 수 있으며, 이치에 맞게 말을 할 수 있으면 행동을 바르게 할 수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주자도 자신이 배우고 따라야 할 스승을 대내외로 확실히 밝힘으로써, 자신의 마음을 바로 하고 언행을 바로 한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공경함으로써 마음을 곧게 하고 의리로써 언행을 방정하게 해서, 공경과 의리가 바로 서면 덕이 외롭지 않게 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