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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學而時習’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

편집부
2016.10.14·3분 읽기·조회 45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배우고 때때로 그것을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않겠는가?(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 「學而」1)”

 

『논어』에서 가장 유명한 말이면서 가장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 바로 ‘학이시습’이다. 그만큼 공자가 학문을 중시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공자의 학문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인의 좋은 점을 본받는 것도 학문의 중요한 영역이다. 그런데 학문에 뜻을 두는 것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다. 일찍부터 배움에 뜻을 두는 사람도 있고, 조금 늦는 사람도 있다.

공자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이 억지로 시켜서 학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움을 느끼며 학문에 전념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다. 따라서 청소년기에 학문에 뜻을 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습(習)’은 새가 자주 나는 모습을 형상한 글자인데, 어린 새가 날기 위해 연습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반복하고 익히는 것을 말한다. 새가 나는 연습을 하는 것처럼 학문에서 중요한 것은 예습보다 복습에 있다. 어제 배운 것을 충분히 익힌 다음에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선행학습에 치중하는 병폐를 되풀이 하면서 마치 남보다 먼저 배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 결과 공교육은 무너지고 사교육만 과열되는 엉뚱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남보다 미리 배운다고 해도 앞에 배운 것을 제대로 익히지 않는다면 결코 앞으로 나갈 수 없다. 다만 남보다 먼저 배웠다는 마음의 만족감만 남을 뿐이다.

나이든 사람들에게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질문했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일을 후회한다고 대답했다. 젊어서는 쉽게 깨닫지 못하는 일을 나이가 들면서 깨닫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늦게 깨달았다고 해서 늦은 것은 아니다. 학문에는 나이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통해 본다면 죽을 때까지 학문에서 손을 놓지 않았던 많은 사람들이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고 반복하며 실천하는 일은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배운 것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고 익히는 일은 죽을 때까지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적을 잘 받기 위해서도 아니다. 배우고 익히는 일이 인간다운 인간을 만드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배움의 시작은 가정이다. 가족이 어울려 사는 공간이 최초의 학교이고, 부모는 스승이며 형제는 선후배와 같다. 이 속에서 질서와 예의를 배우고 사회생활의 기초를 배운다. 따라서 가정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은 사회에서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예로부터 가정교육을 중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공자는 집안에서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를 지키는 것이 바로 학문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난 다음에 글을 배우고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다. 인간의 도리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지식을 배우면 독(毒)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