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으로 보는 세상 231진평의 계책과 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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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구삼은 명이의 때에 남쪽으로 사냥해서 그 큰 우두머리를 얻으니, 빨리 바르게 할 수 없다.(명이괘, 구삼).
고조(유방)를 도와 한나라를 건국하고 안정시킨 두 명의 책사를 꼽으라면 장량과 진평을 들 수 있다. 진평은 가난했지만 그를 크게 될 인물이라고 위해주는 형 덕분에 편안히 공부를 할 수 있었고, 부잣집으로 장가를 든 이후로는 살림이 늘고 친구가 많아졌다. 특히 마을 제사를 지낼 때 “진평이 제물을 나누어 주길 매우 공평하게 하였다”는 평을 들은 후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진승이 위구를 위나라 왕으로 삼자 그 밑에서 태복이 되었으나, 계책을 들어주지 않고 오히려 의심만 하므로 도망가서 항우를 섬겼다. 항우를 도와 여러 전쟁에서 승리하여 벼슬이 높아졌지만, 항우 역시 진평을 의심해서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한나라로 도망쳐서는, 고조의 측근인 위무지를 설득해서 고조를 알현하게 되었다. 고조가 진평의 인물됨에 반해서 “자네가 초나라에 있을 때에 무슨 벼슬을 했는가?” 답하기를 “도위벼슬을 했습니다.” 곧바로 도위로 임명하고, 수레를 같이 타고 다니며 친분을 과시하고 장수들을 감독하는 임무를 맡겼다.
장수들이 화를 내며 “대왕께서는 초나라의 도망병을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으시고 수레를 같이 타고 다니시며, 대왕을 오랫동안 모셔왔던 우리들을 감독하고 통솔하게 하십니까?” 하고 불평을 털어놓았지만, 고조는 그 말들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고조와 절친한 주발 등이 다시 상주를 하였다. “진평이 모자를 장식한 구슬처럼 잘 생겨서 보기는 좋으나 실속은 없습니다. 신이 들으니, 집에 있을 때 형수와 사통하고, 위나라를 섬겼으나 용납 받지 못해서 초나라로 도망갔다가 제대로 쓰이지 못하였고, 또 다시 한나라로 온 것을 대왕께서 호군護軍을 시키며 우리를 감독하게 한 것입니다. 이제 본색을 드러내서 여러 장수들의 뇌물을 받아먹고 부정을 저질렀으니 대왕께서는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고조가 진평을 추천한 위무지를 불러서 꾸짖자, 위무지가 “신이 추천한 것은 재능이었고, 폐하께서 신에게 문책하시는 것은 행실입니다. 전쟁터에서 효자나 도덕군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신이 추천한 것은 나라에 도움되는 그의 계책일 뿐, 형수와 사통하고 뇌물을 받은 것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은 고조가 진평을 불러 그 행실을 비난하자, “위왕은 신을 써주지 않았고, 초패왕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또 초나라에서 올 때 맨몸으로 왔는데, 폐하께서는 녹봉도 주시지 않으니, 뇌물을 받지 않으면 어찌 살겠습니까?”라고 하자, 고조가 진평에게 사과하며 많은 재물을 주고 호군중위로 승진시켰다. 훗날 진평의 계책에 의해 한나라가 반석에 서게 되었고, 승상이 되어 큰 역할을 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 대통령선거를 보면, 후보도 아닌 참모들의 과거에 잘못한 말과 행실을 들추어내며 비난에 열중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는 생각도 다르고 상황도 다르며, 잘못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도 없다. 더구나 참모들은 각기 하나의 재주를 가지고 후보자를 보필하고, 그 재주들이 합쳐져서 후보의 선거전략을 만들 뿐, 대통령후보처럼 독립된 인격체로 참여한 것이 아니다. 인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재주가 중요한 것이다. 머리가 아니라 손발인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명확하지 않고 혼란할 때에는 우두머리의 잘못만 바로잡고, 그 밑에 추종하던 사람의 잘못은 모른 체하며 엄격하게 다스리지 않는 것이 좋다’고 가르치고 또 ‘너무 옳고 절도있게 하는 것만 주장하면 흉하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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