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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四字論語> ‘愼終追遠’ 상례를 신중하게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한다

편집부
2017.01.03·3분 읽기·조회 18

최영갑 / 성균관대 겸임교수

 

증자가 말했다. “상례를 신중하게 하고 먼 조상을 추모하면 백성의 덕이 두터운 데로 돌아갈 것이다.(曾子曰 愼終追遠이면 民德이 歸厚矣리라.「학이」9)”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고 죽는다. 죽음을 처리하는 의식을 상례라고 한다. 그런데 죽음에 대한 용어를 군자는 ‘종(終)’이라 하고 소인은 ‘사(死)’라고 한다. 같은 죽음인데 군자와 소인의 차이에 따라서 칭하는 명칭이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종(終)은 시(始)와 상대하여 말한 것이고, 사(死)는 다 없어져 남음이 없는 것을 이르는 것이다. 군자는 행실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데에 시작과 마침이 있다. 그러므로 종(終)이라 하고, 소인은 뭇 사물과 같이 썩는다. 그러므로 사(死)라고 한다. 바람직한 죽음이란 멋지게 태어난 것처럼 멋지게 죽는 것이 아닐까?

우리 전통문화에서는 죽음을 처리하는 상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신종’이란 바로 죽음을 처리하는 산 사람의 마음을 의미한다. 현대인들이 죽음을 처리하는 방식과 비교해본다면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조들이 행하던 상례의식이 복잡하고 어렵더라도 의식마다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러한 의미보다 간편하고 하루속히 상례를 마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전통 상례에서는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 이것은 자식이 태어나서 세 살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벗어나 살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은의식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 3년 동안 상복을 입는 것은 어렵지만 3년 동안 모든 언행을 삼가는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지 사흘이 지나야 입관을 하고 상복을 입었다. 이것은 부모가 소생하기를 기다리는 애통한 자식의 마음이 반영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돌아가시면 바로 그날 시신을 수습하고 입관하게 된다. 그래서 부모가 소생해도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외국에 사는 자녀들이 달려와도 부모의 얼굴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얼마나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자식으로서 부모가 소생하는 것조차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원’은 돌아가신 조상을 추모하는 제사를 의미한다. 제사는 흉한 의식이 아니라 길한 의식에 속한다. 돌아가신 조상을 마치 살아 있을 때처럼 모시는 것이 바로 제사다. 요즘에는 명절날 해외여행을 떠나는 사람도 많고, 간혹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우리 선조들은 가정집과 함께 사당을 지어 조상을 숭배했다. 아침저녁으로 문안을 드리고, 큰 일이 있을 때마다 조상에게 알리고 행했다. 가옥 구조가 변해서 사당이 사라지고 말았지만 조상을 생각하는 후손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과거는 현재를 존재하게 하는 중요한 바탕이다. 과거를 통해 미래가 존재하는 것처럼 조상을 통해 현재의 자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면 제사에 대한 추모 의식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