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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달콤한 낮잠을 깨운 정조대왕 할아버지

오마이갓(가명)
2022.05.22·10분 읽기·조회 18

* 오마이갓(가명)은 세상과 어른들에게 불평과 불만이 많습니다. 

 

 

 

조선 제22대 국왕 정조(正祖:1752-1800, 재위 1776-1800)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살랑살랑 시원하고, 교실 앞 선생님의 말씀은 “**야, 자~ 우리 살며시 눈을 감아보자~”라고 부르는 듯하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싶은데, 이 놈의 눈꺼풀은 내려오기만 하고 올라갈 줄을 모른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잘래!’ 쿨, 쿨, 쿨.

 


 

얼마가 흘렀을까... “얘야, 그렇게 잠만 자면 무식함이 하늘을 찌른단다” 

 

“(졸린 눈을 비비며) 누구신데 제 잠을 깨우세요?”

 

“너는 언제 태어났지?”

 

“왜요? 울 아버지와 어머니가 2006년도에 절 낳았데요”

 

“음... 그러면 내가 너보다 최소한 200년 전의 사람이겠구나”

 

“와, 노땅이네?”

 

“그건 무슨 말이냐?”

 

“밥맛이라구요!”

 

“밥이야 천천히 씹다보면 단맛이 느껴지고, 새삼 한 톨의 곡식을 만들기 위해 애쓴 이들의 노고가 생각하는데 처음 들어보는 노땅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냐?”

 

“아, 진짜 답답해죽겠네!”

 


 

점점 짜증나기 시작하는 내 얼굴을 보며 빙그레 웃는 이상한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다. 게다가 나보다 200년도 더 이전에 살았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한다. 뭐 이런 괴짜가 다 있는 거지? 아무래도 누군지 알아봐야겠다. 누군데 나한테 시비야?

 

“울 아버지도 주말 이틀 동안 면도 안 하면 얼굴 전체가 바늘투성이인데, 할아버지는 면도도 안 해요? 무슨 수염이 머리카락만큼 길어요?”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느냐?”

 

“뭐라구요? 신체는 아마 몸을 말하는 것같은데, 발부 어쩌고저쩌고는 관심 없다구요!”

 

“어허, 성정이 까칠한 것이 아직 어리긴 어리구나”

 

“뭐라구요? 요즘 세상에 고1을 어리다고 했다간 좋은 대접 못 받아요. 우리 집에서도 아버지, 어머니, 오빠 아무도 저한테 그런 얘기 못한다구요!”

 

“허허,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면 그건 아무리 할아버지라도 내가 미안하구나. 화난 기운을 다스려 평정을 찾으려무나”

 

“병 주고 약 주고 다하시네? 할아버지는 누군데 자꾸 저한테 말 거시는 거에요?”

 

울 아버지 머리카락보다 긴 수염을 가진 이상한 할아버지. 확실히 괴짜다.

 


 

“그런데 할아버지 옷이 왜 그래요? TV나 영화에서 보던 비단옷 같은 걸 입고 계시네요?”

 

“이걸 모른단 말이냐? 예전에는 삼척동자도 다 알고, 이 옷만 보고도 내가 누구인지 당연히 알았느니라”

 

“아이 진짜, 관심 없다구요! 더 묻기 싫으니까 그냥 말하라구요”

 

“곤룡포라고 들어보지 않았느냐?”

 

“곤? 룡? 외국어에요?”

 

“어허, 만백성의 부모이자 하늘의 뜻을 이어 이 땅의 만물을 관장하는 임금이 입는 옷인데 그걸 모른단 말이냐?”

 

“헐~, 그러면 할아버지는 임금이에요? 언제, 누구냐구요?”

 


 

짜증나서 쏘아부치니 이 할아버지, 좀 당황한 것같다.

 

“성정이 참으로 괴팍하구나. 앞으로는 좋은 책, 성현의 말씀을 접해서 인격을 닦아가거라”

 

“아, 쓸데없는 말씀 많으시네. 할아버지 누구냐구요!”

 

“그래, 너같은 아이에게 어려운 말을 하면 서로 답답하겠구나. 나는 조선국왕이었고, 영조대왕이 할바마마셨고 사도세자가 아바마마셨다”

 

“아, 정조! 정조네. 진작 그렇게 말하면 되지, 뭘 그렇게 빙빙돌려 말해요?”

 

“정조? 나는 죽기 전까지 내가 후대에 무슨 묘호로 불릴지를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죽고서야 새로운 왕이 신하들과 논의해서 선대왕의 묘호를 정하는 게 법도였다”

 

“아, 그런 건 모르겠구요, 하여간 할아버지는 정조라구요. 1776년부터 1800년까지 왕으로 있었고, 다음 임금이 순조였구요”

 

“나는 병신년에 왕위에 올라서 경신년 유월 스물 여드레에 숨이 끊어졌을 것이다”

 

밥맛 할아버지, 알 수 없는 어려운 이야기들을 또 늘어놓기 시작했다.

 


 

“외국어 같은 말은 그만 하시구요, 그래도 유명한 분이니 이왕이면 좀 더 멋있게 정조대왕이라고 불러드릴 테니까 할아버지 그때 뭘 하셨는지 자랑 좀 해보세요. 요즘 선거 때마다 서로 자기들이 뭘 했는지 자랑하기 바쁘더라구요”

 

“선거? 그건 무엇이냐? 기괴한 어휘로다”

 

“대왕 할아버지 때는 잘난 집안에서 태어나면, 즉 할아버지는 왕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니까 재수가 좋아서 바로 왕이 된 거에요. 종놈 집에서 태어났으면 아무리 잘 나도 종이었을꺼라구요”

 

“음, 하긴 할바마마, 아바마마, 나의 운명이 애닳은 부분이 많았지만 왕가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니 그렇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꼭 좋은 것은 아니었느니라”

 

“어휴~ 왕 재수! 요즘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하면 몰매 맞아요. 팔자 좋은 건 그냥 좋은 거라구요”

 


 

왕~ 수염 많은 대왕 할아버지, 잠시 눈을 떨어뜨렸다. 괜히 슬퍼보인다.

 

“아, 대왕 할아버지의 아버지 일은 안타깝게 생각해요.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요. 나 같으면 우리 아버지 죽인 할아버지는 다시는 쳐다도 안 봤을 거에요”

 

“아바마마에 대한 할바마마의 처분은 어린 나에게 너무 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나 역시 보위에 오르고 종사를 다스리다보니 할바마마의 마음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느니라”

 

“뭐라구요? 그게 이해할 일이에요? 이 할아버지, 답답한 소리하시네?”

 

“신체발부 수지부모라는 앞서의 말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최악에는 내가 낳은 자식의 목숨을 거둘 수 있는 것도 이 땅 만백성의 부모인 임금과 부모일텐데 할바마마는 아바마마의 아버지이시자 우리 조선의 국왕이셨으니 그 분의 처분은 당연한 것이었을 것이야”

 

“아, 이 할아버지 진짜! 말같은 소리를 하세요. 이건 완전 또라이짓이잖아요!”

 

나하고 너무 안 맞는 대왕 할아버지한테 열받아서 소리까지 질러버렸다.

 


 

“우리 그냥 서로 좋은 이야기 하자구요. 학교 수업시간에 한국사 선생님이 여러 가지 얘기하면서 대왕 할아버지는 훌륭한 분이라고 했다구요. 저 그냥 좋게좋게 볼테니까 자랑 좀 해보세요”

 

“글쎄다. 이루고자 하는 꿈은 많았는데, 완성하기 전에 눈을 감은 것이 한이다”

 

“그렇긴 하죠. 할아버지가 조금만 더 했으면 우리나라가 의외로 일찍부터 선진국이 됐을 수도 있을 것같은데, 왜 그렇게 일찍 팍~ 죽어버렸어요?”

 

“인명은 재천이니 어찌하겠느냐? 주어진 운명과 수명대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 올바른 학문의 자세가 아니겠느냐?”

 

“또, 또, 어려운 이야기 하시네? 그냥 제가 얘기해볼께요. 할아버지 영조에 이어 탕평책 실시, 초계문신제도, 규장각 설치, 장용영 창설, 수원화성 건설, 대전통편 같은 책 편찬... 이런 거 했죠?”

 

“허허, 그래도 서적은 좀 읽긴 했나 보구나. 왕조실록은 너같은 아이는 볼 수 없을 것인데, 어디서 그런 글은 보았느냐?”

 

“아, 진짜. 인터넷 검색하면 정조실록도 다 나오고, 그때 정책들도 설명하는 글들이 무지무지 많아요!”

 

아무래도 서로 안 맞아도 너무 안 맞다.

 


 

“그래서 지금 보니 대왕 할아버지 하신 일들이 잘하신 거 같아요, 아니면 잘못한 거 같아요?”

 

“모든 일들은 만백성과 종묘, 사직을 위한 것이었으나 의도와는 다르게 별다른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백성들에게 피해를 준 일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좋은 뜻으로 했던 것은 분명하다”

 

“수원화성이나 규장각 같은 건 잘 만들어서 지금도 좋은 구경거리가 되고 있어요. 한번씩 대규모로 수원까지 왕복한 것도 그림이나 설명하는 글이 있어서 재미있더라구요. 하지만 대왕 할아버지 죽자마자 우리나라가 세도정치에 들어가서 완전히 엉망진창이 된 거 알아요? 진짜 그때부터는 공부를 하면 할수록 열 받고 우울해요”

 

“내가 세상을 떠난 후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구나. 하지만 사람이든, 나라든, 백성이든 역경이 있겠지만 그걸 이겨내고 살아가보는 것도 괜찮은 것이다. 너도 이제 조금만 지나면 어엿한 여인네가 될것같은데, 어른들과 지아비 잘 모시고 아이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은 훌륭한 어머니가 되거라”

 

“아, 짱나!”

 


 

“***! ***! 눈 좀 뜨자. 수업 끝날 때까지 계속 잘 거야?”

 

우리 학교의 사랑스러운(?) 한국사 선생님이 저 멀리서 나를 불렀다. 하늘에서 들리는 메아리인가...

 

“야, 야. 그만 자. 쉬는 시간이야. 이제 놀아야지!”

 

이상하다, 친구 목소리도 메아리처럼 들려온다.

 

찰싹, 찰싹. 등판이 아팠다.

 

친구의 손바닥이 내 등을 후려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왕 할아버지는? 정조대왕 할아버지는?”

 

“얘가 잠꼬대까지 하네? 무슨 헛소리야?”

 

 

친구 손에 끌려 화장실에서 찬물에 세수를 하고, 이리저리 걷고서야 여기가 어딘지 알았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았다. 세상에~ 내가 정조대왕 할아버지를 만났다는 말이야???

 


 

내가 너무 성질내고, 쏘아붙인 건 미안하다.

 

하지만 그 할아버지도 문제다. 그렇게 자랑하라고 했는데 제대로 자랑도 할 줄 모르고.

 

지금 선거 나오면 무조건 떨어질 거야. 말빨이 저렇게 없어서 무슨 정치를 해?

 

그래도 같이 성질 내지 않고 소곤소곤 얘기 나누고 내 얘기 들어준 건 우리 아버지, 어머니도 배워야해. 두분 평소에는 좋은데, 열 받으면 도무지 대화가 안 되거든.

 


 

정조대왕 할아버지!

 

앞으로도 꾸벅꾸벅 졸 일은 많을 테니까 적당한 때에 다시 나한테 찾아와요.

 

할아버지 성격으로는 어디 가서 말도 못해. 요즘 애들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상대 안 해요.

 

고생했어요. 자랑스러워요.

 

내 꿈에 나와준 덕분에 집에 와서 대왕 할아버지가 뭘 했는지 하나씩 찾아봤어요.

 

아직 할아버지를 잘 모르지만 기회 되면 수원 화성도 가보고, 할아버지 아버지 무덤도 가볼꺼에요. 역시 유명한 곳은 가서 보고, 듣고, 느껴야 제대로 알테니까요.

 

그때 혹시 내가 혼잣말로 물어보면 살며시 다가와 알려주세요. 물론 그렇다고 할아버지 말만 모두 믿진 않을 꺼에요. 왜냐면 난 나니까요. 빠이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