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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46어려울 때는 노력에 노력을 더해야 한다

윤상철
2022.07.29·4분 읽기·조회 54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육은 까는 데 흰 띠를 쓰니, 허물이 없다. 상에 말하기를 ‘까는 데 흰 띠를 씀’은, 유(柔)가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대유괘 초육).

 

 

 

병이 나서 아플 때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면 병세가 호전된다. 병이 난 것은 나쁜 기운이 들어온 것이니, 나쁜 기운의 방향을 틀어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또 일이 안 풀릴 때 좋은 집으로 이사를 가면 운이 좋아지기도 한다. 좋은 환경을 대하면 병도 낫고 일도 잘 풀리는 것이다. 생각이 잘 안날 때도 잠시 기분전환을 하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른다. 잠시 긴장된 마음을 이완하고 새로운 공기를 마시고 오면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이다.

 

여러 여건상 이사갈 수 없으면, 좋다고 하는 곳으로 여행을 갔다가 오는 방법도 있다.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그 지방의 기운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예로부터 병이 들면 살던 집을 떠나서 새로운 거처로 옮기는 경우가 많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왕이 병이 들었을 때, 거의 예외없이 다른 궁으로 옮기거나 가까운 신하의 집에 머물며 병을 고쳤다. 이를 피접(避接) 또는 피질(避疾)이라고 한다. 피접의 효과가 좋았던지, 조선시대 내내 왕자나 공주 할 것 없이 피접가는 것을 선호했다. 병에 걸렸을 때 살던 환경을 바꿈으로써 좋은 효과를 볼 수 있고, 또 몸에 좋은 환경을 찾아감으로써 살길을 여는 것이다.

 

피접을 갈때 “어느 방위로 언제 가면 길하고, 또 어떤 성씨의 집으로 가면 길하다.” 하면서, 길흉신살을 보는 방법에 의해 피접할 집을 선택하곤 했다. 그리고는 피접하려고 하는 집에 사는 왕족이나 신하를 다른 곳에 살게 하고 그 집으로 들어가 병을 치료한 것이다. 하지만 너무 급하게 내쫓고 또 환자가 살기 편하게 만들기 위해, 집주인에게 집고치기를 요구함으로써 그 집안에 피해를 주기도 했다. 보름 또는 몇 달의 피접을 위해서 집주인이 곤욕을 치뤘던 것이다.

 

피접의 집으로 선택당하는 것을 싫어만 한건 아니다. 임금이나 왕자 공주가 자신의 집으로 피접 오는 것을 싫어만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막내아들인 영응대군의 집으로 옮겨가 거처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죽는다는 것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곁에 가서 살다가 죽은 것이다. 승하하기 전에 문종과 세조를 불러서 영응대군과 친하게 지낼 것을 유언하기도 했다.

 

또 한나라 안제(安帝) 때 태자가 병이 들어서, 안제의 유모 왕성의 집으로 피접을 가게 되었다. 그 때 재상 병길(邴吉)이 “왕성의 집은 새로 수리하여 토지신이 놀란 상태이므로 태자가 오래 묵을 수 없다.”고 하였더니 왕성이 병길을 모함하며 다투었다.

 

왕성이 병길과 다툰 이유는, 태자를 자신의 집에서 오래도록 모시면, 지금의 황제 뿐 아니라 다음의 황제에게도 공을 세우는 일인데, 병길이 좋지 않은 말을 해서 그 기회를 망치려 했기 때문이다. 환자에게도 병을 나을 좋은 기회이고, 집을 제공하는 사람에게도 출세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던 것이다.

 

피접은 좋은 기운을 받자는 뜻도 있지만, 자신에게 몰려드는 악운을 잠시 피하자는 뜻도 있다. 잠시 다른데로 가서 살다가 병이 나면 다시 돌아오곤 했기 때문이다. 병이 나면 의사에게 보이고 처방을 받아 치료를 한다. 스스로 강건한 마음과 꼭 완쾌된다는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등 인간으로서의 노력을 다하고, 여기에 좋은 사람이 있고 환경이 좋은 곳으로 이사가서 새 기운을 받는 노력을 더 보태는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병으로 약해지거나, 자신의 힘으로 견뎌내기 힘든 상황이 오면, 조그만 정성이라도 더 들이면 좋게 된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