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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117지위가 불안할수록 현인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편집부
2017.03.15·4분 읽기·조회 15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육오는 후회가 없어지니, 어진 사람과 뜻을 합해서 정치를 하면 나아감에 무슨 허물이 있겠는가! 상에 말하기를 ‘어진 사람과 뜻을 합해서 정치를 함’은 일을 함에 경사가 있을 것이다.[睽卦 六五]

 

중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형제간에 골육상쟁을 하며 왕위를 다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태백·중옹·계력의 삼형제는 우리나라 양령·충령·효령형제의 이야기와 더불어 왕위를 서로 양보하는 아름다운 미덕으로 유명하다.

 

주나라 태왕(고공단보)의 아들인 이들 형제는 부왕이 셋째 계력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고, 남쪽 형만으로 가서 숨어 살았다. 그곳 백성들이 태백을 임금으로 받들어서 오나라의 시조가 되었는데, 후사 없이 죽으면서 동생 중옹이 임금을 이었다.

 

역사는 순환한다고 했는가? 19대 임금 수몽에게는 네 아들이 있었는데, 맏이가 제번이고, 둘째는 여제, 셋째는 여말, 넷째가 계찰이다. 수몽은 계찰이 현명하고 재능이 있다 해서 왕위를 물려주고 싶었지만, 계찰이 극구 사양하여 할 수 없이 제번에게 물려주었다. 제번이 부왕의 탈상이 끝나길 기다려서 계찰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지만, 계찰이 가출하여 숨어 지내며 농사를 지으니, 더 이상 강요를 못하고 그가 살던 연릉땅에 봉했다. 그래서 계찰을 연릉땅의 막내 공자(延陵季子)라고 부르게 되었다.

 

제번이 죽을 때 동생(여제)에게 물려주면서 이런 식으로 물려준 왕위가 계찰에 이르도록 유언하였다. 그 유언에 따라 여제는 여말에게 물려주었고, 여말이 죽을 때 계찰에게 물려주려고 하였으나 계찰이 또 도망가 숨었으므로 여말의 아들 요가 임금이 되었다. 그렇게 되자 제번의 맞아들 광이 불만을 품고, 오자서와 모의하여 전제라는 자객을 시켜 요를 죽이게 하고 오나라의 임금이 되니, 이 사람이 유명한 합려이다. 합려는 오자서와 더불어 오나라를 패자로 만들었으나, 월왕 구천과 싸우다가 부상을 당해 죽고, 그 아들 부차에 이르러 멸망하였다.

 

계찰은 박식하고 다능하였다. 자신의 조카인 요임금의 등극을 알리러 노나라에 가서는 『시경』의 각 풍들을 적절히 평하였고, 제나라에서는 안영에게 정권과 봉읍을 임금께 돌려줌으로써 위기를 극복하라 하였으며, 정나라에 가서는 자산에게 “재상의 자리에 올라서 정나라를 반석에 올려놓으라.”고 하였고, 진(晉)나라에 가서는 조문자·한선자·위헌자 등 세 대부를 보고 “진나라의 정권은 장차 당신 세 가문에 집중될 것”이라고 말하여 진나라가 조나라·한나라·위나라의 셋으로 나뉠 것을 예견하였다.

 

요임금이 합려에 의해서 시해당했다는 말을 듣고 귀국해서 “선왕의 제사를 이어지게 하고 백성을 잘 살게 한다면, 누가 되었든 나의 왕이다.”하면서 합려를 오나라의 왕으로 인정하는 한편, 요의 신하로 갔다 왔으므로 요의 무덤 앞에서 사신 갔던 일을 복명하였다. 만약 합려가 덕과 문치(文治)를 중시한 계찰을 중용했다면, 자신의 지위도 튼튼해졌을 것이고 오나라의 역사도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어진 사람과 뜻을 합해서 정치를 하면, 자기 자리가 아니라서 생겼던 잘못이 없어진다’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