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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50항렬자에 담긴 선조의 가훈

윤상철
2022.09.30·4분 읽기·조회 61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초구는 본래 밟은대로 가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상에 말하기를 ‘본래 밟은대로 감’은 홀로 원하는 것을 행하는 것이다(리괘 초효).

 

대개 같은 형제의 이름을 지을 때는 돌림자를 쓴다. 요즘에는 친형제가 별로 없으므로, 사촌형제 간에 같은 글자를 써서 친밀함을 나타내기도 한다. 돌림자는 항렬의 글자를 쓰는 것이 원칙인데, 항렬자는 같은 친족의 같은 세대에게는 공통된 글자를 써서 다른 세대와 구별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항렬자에는 일정한 운행패턴이 있기 때문에, 항렬자만 보면 그 집안에서의 위치를 알 수 있게 된다.

 

성씨는 어느 분을 시조로 해서 번성한 후손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고, 항렬자는 시조 혹은 중시조의 몇 대 후손이라는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므로 성씨는 조상을, 항렬자는 그 조상의 몇 대 후손이라는 것을, 마지막 남은 한 글자에 개인의 특성이 담기기 마련이다. 그러니까 옛 사람들은 이름 석 자만 보면, 그 사람의 조상부터 개인적인 특성까지 모든 정보를 바로 알 수 있었고, 당연히 자신의 문중에 해가 되는 행동은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가문의 행복보다는 개인의 행복을 더 추구하는 세태라서 그런지, 항렬자를 이름에 넣는 사람이 드물어졌다. 사실 항렬자가 뜻하는 지위를 감당하기 어렵기도 하고, 또 항렬자가 들어가면 좋은 파장의 이름을 짓기도 어렵다.

 

항렬자는 예법 책에 내용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근거도 없는 미신관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항렬자의 흐름을 보면 각 집안의 우주관을 알 수 있어서 재미있다. 우주의 흐름에서 오행이 상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안은, 오행이 상생을 반복하는 항렬자를 쓴다. 예를 들어서 경주김씨는 ‘목(병柄)→ 화(희熙)→ 토(기基)→ 금(종鍾)→ 수(하河)→ 목(주柱)→ 화(연然)→ 토(규圭)→ 금(호鎬)’ 등의 돌림자를 쓴다. 조상이 후손을 생해주고 북돋아 주어서 집안이 영원히 번창한다는 개념이다.

 

또 우주의 흐름에서 숫자의 반복연동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집안은, 1에서 10까지를 반복해서 항렬자를 쓴다. 숫자가 늘어나듯이 후손으로 갈 수록 점점 흥성해진다는 개념이다. 예를 들어서 안동권씨는 ‘1(병丙)→ 2(중重)→ 3(태泰)→ 4(녕寧)→ 5(오五)→ 6(혁赫)→ 7(순純)→ 8(용容)→ 9(구九)→ 10(승升)’ 등의 형태를 항렬자를 쓴다.

 

이밖에도 사계절 돌아가듯이 우주의 원만한 순환을 강조하는 집안은 10천간의 순환(한양조씨)이나, 12지지의 순환(강릉김씨)을 중시하며 항렬자를 쓰기도 한다. 각 집안마다의 독특한 우주관을 돌림자로 쓰는 것이다.

 

이렇게 순환하는 항렬자를 쓰면서도, ‘병丙’자에서 ‘일一’자의 뜻을 도출해 내고, ‘중重’자에서 ‘이二’자의 뜻을 도출해 내는 것은, 오로지 각 집안 어른들의 뜻이다. 항렬자의 운용은 각 집안의 가훈과 같기 때문에, 자손에게 강조할 덕목을 글자에 담은 것이다. ‘1’이라는 숫자도 중요하고, ‘병’자의 ‘밝다, 굳세다’라는 뜻도 중요하므로, ‘일一’자 대신에 ‘병’자를 썼다는 것이다.

 

이러한 항렬자 운용은 각 집안 선조분들의 우주철학관이 담겨있다. 집안마다 원칙도 다르고 철학관도 다르지만, 후손에게 교훈이 되고 후손이 번창했으면 하는 염원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조상의 뜻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어야지, 예법에 어긋난다, 원칙이 없다, 근거가 없다는 말이야말로 예법에 어긋난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본래 타고난 성품 그대로 살면 잘못이 없다. 남을 의식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의 덕과 능력을 키워나가는 위기지학(爲己之學)을 실천해나가는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