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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51범려의 삼전사기

윤상철
2022.10.17·4분 읽기·조회 50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왕과 후를 일삼지 않고 그 일을 높이 숭상한다. 상전에 말하기를 ‘왕과 후를 일삼지 않는다’는 것은 뜻이 본받을 만하다(고괘 상효).

 

범려(范蠡)는 월(越)나라의 대부를 지냈다. 자는 소백(少伯)이며, 스스로 치이자피(鴟夷子皮) 또는 도주공(陶走公)이라고 호를 지었다. ‘치이자피’는 술을 담는데 쓰는 말가죽으로 만든 큰 자루라는 뜻이다. 모양이 올빼미(치이자)의 배처럼 불룩하여 그렇게 부른다. 오나라 왕 부차가 오자서를 죽여 그의 시신을 가죽자루에 넣어 강물에 던졌는데, 범려도 자신이 모시던 구천이 오나라 왕 부차에게 항복하여 모욕을 당하자, 오자서가 죽임을 당한 경우와 같다고 생각하여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 후 월왕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평정하고, 이어 각 제후들을 평정하여 구천을 패왕(覇王)이 되게 하였다. 그러나 구천의 성품이 각박함을 깨닫고, 또 그의 스승인 계연(計然)의 재산을 늘리는 이론을 시험해 보고 싶은 욕망에서 월나라를 떠나 제나라로 피해갔다. 가장 좋은 대우를 받을 때 부귀를 버리고 떠난 것이다.

 

제나라에 도착하자 대부 문종(文種)에게 편지를 써서 “좋은 활이라도 새가 다 잡히면 창고에 들어가 썩기 마련이고, 교활한 토끼가 모두 잡히면 쓸모없게 된 사냥개는 삶겨져서 주인에게 먹히기 마련입니다. 월왕 구천은 목이 길고 입은 새처럼 뾰족하니, 어려움은 함께 할 수 있어도 즐거움은 같이 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왜 월나라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까?”고 권한 후, 본인의 이름을 치이자피로 고치고, 바다를 개간하며 농사를 지어서 재산을 수십만 금으로 늘렸다.

 

제나라 사람이 그의 현명함을 듣고 재상으로 삼자, “개인적으로는 천금의 재산을 모았고, 벼슬은 재상까지 이르렀으니, 사람으로서는 정점까지 간 것이다. 존귀한 이름을 가지고 오랫동안 있는 것은 불길한 것이다”라며, 재상의 인장을 돌려주고, 친구와 마을사람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고는 몰래 빠져 나가 도땅에 정착했다.

 

그리고는 도땅으로 달아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도주공(陶走公)’이라고 이름을 바꿨다. 이번에는, 전혀 육체적인 노력을 하지 않고, 단지 물건이 쌀 때 사서 저장해 두었다가 비싸지면 파는 방법으로 수만금을 벌어서는, 역시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때 그의 둘째 아들이 초나라에서 살인을 하고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했다. 그래서 막내아들에게 초나라로 가서 형을 구하라고 하였는데, 큰 아들이 자기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극구 자원했다. 할 수 없이 큰 아들을 보내면서 탄식을 했다. “이제 둘째 놈은 죽겠구나!” 주변사람이 이유를 묻자, “막내는 내가 부유할 때 태어났으므로 돈 아까운 줄을 모르고 펑펑 쓴다. 둘째를 살리는 일은 그렇게 돈을 물 쓰듯이 해야 되는 것이다. 그런데 고생하며 자란 큰 아들은, 돈의 효율성을 따져가며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야 뇌물을 줄 것이다. 그렇게 재물을 아끼면 둘째는 풀려나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의 예측대로 결국 둘째 아들은 사형을 당하고 말았다.

 

그의 일생은 파란만장했다. 세 번이나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을 반복했는데, 성공한 뒤엔 지위와 돈을 다 버린 채 미련 없이 떠나고, 새로운 곳에 정착해서는 매번 새로운 방법으로 지위와 돈을 벌었다. 잘 사는 방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시험하며 살다가, 말년에는 도땅에서 늙어 죽었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높은 지위와 재물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해야만 할 일이고 보람 있는 일이기 때문에 성실하게 힘을 다해서 노력하는 것이다’ 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