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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52백기의 너무 늦은 반성 

윤상철
2022.10.31·4분 읽기·조회 36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상구는 왕이 나아가서 치면 아름다움이 있을 것이니, 우두머리만 죽이고, 그 졸개를 풀어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리괘 상구).

 

진나라 소양왕은 진시황의 증조할아버지이다. 중국을 통일하지는 못했지만, 주변의 여러 강대국을 침공하고, 황제국인 주나라를 멸망시키는 등 진나라를 중국의 유일한 강대국으로 키워나갔다. 그 중심에는 무안군 백기(白起)가 있었다. 백기는 머리가 작은데다가 위를 향해 뾰족해서 예두장군(銳頭將軍)이라고 불리웠는데, 기마병을 이용한 전투에 능했다.

 

그가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것은, 소양왕 13년에 한(韓)나라의 신성을 공격해서 함락한 전투부터였다. 이듬해엔 한나라와 위나라 연합군을 낙양의 남쪽에서 대파하고 24만명을 죽임으로써 두 나라의 군사력을 회복불능으로 만들었다. 이후로도 전투마다 승리해서 고속 출세를 했는데, 각 전투마다 상대방 군사들을 몰살에 가까울 정도로 죽여서 ‘백기, 예두장군’이라는 말만 들어도 벌벌 떨게 만들었다.

 

그의 살육전의 최고봉은 장평전투이다. 진나라가 한나라를 공격해서 둘로 나누었는데, 조나라가 가만히 보고만 있다가 둘로 나뉘어서 고립된 한나라의 상당 땅을 꿀꺽하고 말았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번 것이다. 화가 난 진나라가 조나라를 공격했다. 조나라는 명장 염파(廉頗)를 장수로 삼아서 진나라 군사와 대항하게 했다. 서너 개의 작은 전투는 승리할 수 있었지만, 견고한 상당성을 명장 염파가 지키고만 있으니 더 이상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진나라가 이간책을 썼다. 간첩을 조나라로 보내서는 “진나라가 무서워하는 것은 조괄(趙括)이 장수가 되는 것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쉽고 또 조만간 항복할 것이다”라고 떠들며, 조나라 왕의 마음을 흔든 것이다.

 

결국 조나라 왕이 염파를 조괄로 바꿨다. 전쟁터에 온 조괄이 곧바로 출병을 명하였다. 무안군으로 장군을 바꾼 진나라 군대는 일부러 패한 척 도망가다가, 기병을 이용하여 조나라 군대가 상당성으로 돌아가는 길을 끊었다. 당황한 조나라 군대가 장평에서 임시 방어책을 쌓고 수비에 들어갔다. 진나라 군대는 포위만 한 채 보급로를 끊고 기다렸다. 한 달 보름이나 굶은 조나라 군대가 보급로를 뚫으려고 나서다가, 조괄 마저 화살에 맞아서 죽자, 40만 명에 이르는 조나라 군사가 맥없이 항복했다. 항복한 군사가 다시 배신할 것이라고 생각한 무안군이, 항복한 포로를 모두 산채로 구덩이에 묻어 죽였다. 그러고도 또 목을 베거나 포로로 잡은 수가 45만 명이었다고 한다.

 

그로부터 3년 후에 소양왕과 승상 범수(혹은 범저)를 비난한 죄로, 백기를 사병으로 강등시키고 이어서 자결할 것을 명했다. 무안군이 검을 들어 자결하면서 “내가 하늘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자결을 해야 하는가?”라 하였다. 잠시 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전투에서 항복한 조나라의 군사 수십 만을 모두 파묻었으니 죽어 마땅하다”며 마침내 자살했다.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피치 못해서 전쟁을 하게 되면 살생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백기는 상대방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잔인하게 괴롭히며 희열을 느끼는 부류는 아니지만, 죽이지 않아도 될 소중한 생명을 전쟁이라는 이름아래 죄의식 없이 마구 죽였다. 자신이 죽을 때에야 그것을 깨닫고 반성한 것이다.

 

그래서 주역에서는 “능력있고 덕 많은 왕이 전쟁터에 나가 승리한 뒤에, 우두머리만 죽이고, 그 졸개를 풀어주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라고 가르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