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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도심 속 옛터조선 中人 문화의 산실 松石園터

이홍익 기자
2014.02.01·2분 읽기·조회 33

 

 

경복궁 서쪽에서 인왕산 기슭에 이르는 동네인 서촌(西村)은 조선시대 중인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서울 종로구의 체부동, 효자동, 통의동, 누상동, 옥인동 등이 속한 이 지역은 한옥이 많이 남아 있고 조선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 문화유적이 산재해 있다.

재개발로 말이 많은 이 서촌 옥인동 길가를 걷다보면 구석에 뻘쭘하게 있는 작은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중인 문학의 절정인 옥계시사(玉溪詩社)가 모이던 송석원(松石園) 터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이다.

송석원은 옥계시사의 맹주인 훈장 천수경의 집이다.

시사는 시를 짓는 동호인 모임으로, 옥계라는 이름은 옥인동을 흐르던 옥류동천 계곡에서 나왔다.

정조 10년인 1786년 규장각 서리들을 중심으로 결성돼 30여년 간 이어진 옥계시사는 조선시대 웃대 중인 문화의 정점이다.

웃대는 서촌의 별칭이다.

조선시대 중인(中人)들은 비록 양반이 아니어서 관직 진출은 막혔지 만 전문지식에 바탕한 치부(致富)로 인한 경제적 여유와 사대부(士大夫)를 능가하는 높은 문화적 소양을 바탕으로 조선 후기 문화의 중심세력으로 떠올랐다.

추사 김정희와 같은 당대 명문가 출신의 대학자들도 이들과 거리낌 없이 교류했다.

그 중인(中人) 문화의 중심에 송석원에서 열렸던 옥계시사가 있었던 것이다.

옥계시사의 모습은  단원 김홍도 같은 당대 일급 화가들의 그림이나 글을 통해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전해지고 있다.

옥계시사의 백일장은 누구나 참여하고 싶어 하는 대단한 자리였다 전한다.

하얀 종이를 펼치고 글재주를 겨룬다 해서 ‘백전(白戰)’이라 했던 행사에는 수백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뤘고 재상들도 백전 심사를 영예로 알았다 한다.

백전이 열릴 때면 순라꾼도 사람을 붙잡아도 백전에 간다고 하면 놓아주고 장원을 한 사람의 시축(詩軸)은 그날로 한양 안에서 돌고 돌아 종이가 다 해져버린 뒤에야 주인에게 돌아올 만큼 인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