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지역 문화재를 소개합니다 - 39고부향교 순도비
숨어있는 名賢 愚齋 金大眞 선생<BR>無道天下에 몸으로써 殉道 실천
호남의 명산인 두승산(斗升山) 아래 성황산 남쪽 고부(古阜) 고을에서 제일 좋은 명당터에 자리잡은 고부향교 교정(校庭)에 순도비(殉道碑)가 있다. 이 순도비의 주인공은 김대진 선생이다. 공부자탄강 2528년(1977) 12월에 건립한 순도비는 박성수(朴性洙) 원임 성균관장이 찬(撰)하고 정주영(鄭周永) 부관장이 서(書)했다. 김대진 선생의 관향은 의성(義城), 휘(諱)는 진근(鎭根), 자(字)는 대진(大眞)이다. 선생은 의성 김씨 시조인 휘 석(錫)의 29세손으로, 고종23년 병술년(1886)에 사헌부 감찰 휘(諱) 형재(亨載)와 연안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조선조 오봉(鰲峰) 충강공(忠綱公) 제민(齊閔)과 태천(苔川) 정민공(貞敏公) 지수(地粹) 등이 충절로 세상에 높이 나타났으니 선생은 천태산(千台山)의 정기를 받고 지금의 정읍시 이평면 산매리에 직손으로 태어나 기우(氣宇)가 청양(淸揚) 활달(豁達)하고 도량(度量)이 컸다.
선생은 연재(淵齋) 송병선(宋秉璿) 문하에서 가르침을 받아 학문이 깊었고 행실이 돈독하여 사우(士友)들이 모두 공경하였다. 아우인 진해(鎭海)와 동기간의 우애를 평소의 생활 신조로 삼았고, 부모의 병환이 위급하자 단지(斷指)를 함으로써 연명(延命)케 했으며 삼년상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한 선조를 위하는 일에도 정성이 독실하여 의성김씨대동보 편수, 상주(尙州)의 선대사적 간행, 부여(扶餘)의 신도비 건립, 만종산(萬宗山)의 비각 건립, 태천속집(笞川續集) 편집, 고부향교의 재산인 전답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게 된 업적 등이 모두 선생의 정성이다.
을사년에 연재 선생이 망국의 한을 안고 순도(殉道)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편안하게 있을 수 없는 아픔을 이기지 못하고 석 달 동안 복(服)을 입었다. 그 후 광복이 되어 국회의원 선거를 하게 되자 당시 성균관장 겸 유도회총본부 회장인 심산(心山) 김창숙(金昌淑) 선생께서 직접 방문 추천하였다. 정읍 유림들이 말하기를 “이 때를 당하여 반드시 학식 높은 선비를 출마시켜 기강을 떨침으로써 유도부흥 하도록 하자”고 하여 선생을 천거 공천하여 힘껏 노력했으나 불행히도 당선되지 못했다. 6.25사변을 당하여 북한군이 지도층계습이라는 죄목으로 체포구금 되었다가 북한군이 후퇴하면서 방화를 하여 민족 지도자 360여분과 함께 소사하셨다. 당시 선생은 초산경찰서(현 정읍경찰서) 불꽃 속에서 고초를 당하면서도 의연하게 의관을 정제하고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하고 순도(殉道)했으니 위엄이 꺾이지 않는 대장부였다.
선생은 웅대한 포부와 굳센 절개를 선비로 당세에 출사했으면 훌륭한 치적을 베풀었을 텐데 장한 뜻이 중도에 좌절되었으니 지금도 고부 유림들은 모든 선비들이 한탄하고 애석함을 금치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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