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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37공을 세웠으면서도 겸손하다면 누가 존경하지 않을 것인가?

편집부
2013.12.15·3분 읽기·조회 26

구삼은 공로가 있고도 겸손함이니, 군자가 마침이 있으니 길하다. 상에 말하기를 ‘공로 있고도 겸손한 군자’는 만 백성이 승복한다.[謙卦 九三]

 

몇해 전에 친구의 부친상이 있어서 대전에 있는 국립현충원의 합동 안장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고인에 대한 경례를 하고 앉으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종교라고 하면서 기독교?불교?천주교?원불교의 순서로 목사 스님 신부 교무 등이 차례로 나와서 자신들의 방식대로 고인에 대한 명복을 빌었다. 아마도 국가에 공이 있는 분들이라서 각 종교마다 그 고마움을 표시하는 것 같았다.

이어서 유가족 대표가 헌화를 하고 영현봉송을 하게 되었는데, 친구가 제일 앞장서서 영현봉송을 하는 것이었다. 아까 유가족 헌화도 제일 먼저 하더니 …. 나중에 알고 보니 현충원 행사는 철저히 계급 우선이란다. 친구의 선친께서는 예비역 소령이었고, 다른 사람들은 각기 대위 상사 중사 등 계급이 낮으므로, 계급순으로 헌화하고 봉송하는 것이고, 또 계급순으로 좋은 자리와 묘역의 평수가 정해진다는 것이다. 아마도 똑같이 공이 있어도 계급순으로 공의 단계가 나뉜다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얼마 전에 월남전의 영웅 채명신장군이 유명을 달리하였다. 한국전쟁 때부터 적진에 침투해서 교란을 하는 유격전에 밝았으며, 월남전에서는 장군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최일선에서 직접 지휘를 하여 병사들의 신망을 한 몸에 받았으며, 김일성의 오른팔인 길원팔장군을 적진 깊숙이 들어가 체포해서 회유할 때 그가 자결하면서 맡긴 양자를 자신의 친동생으로 삼아 호적에 올렸으며,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 등등 그의 지인용을 갖춘 훌륭한 장군으로서의 면모나 국가를 반석에 올린 공로를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잊을 수 없다.

그런데 그가 또 큰 은혜를 이 땅에 베풀고 떠났다. “나는 전우를 사랑한다. 그들 곁에 묻히고 싶다.” 유언대로 장군묘역이 아닌 사병묘역에 묻혔다. 항시 부하를 ‘전쟁에 참여해서 생사고락을 같이 하는 친구’로 생각했던 그의 생각을 죽으면서 실천한 것이다. 고인의 훌륭한 마음이야 익히 아는 바이지만, 고인의 유족들은 받아들이기 힘든 결정이었을 것이다. 현충원을 가보면 장군과 사병의 신분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너무나 쉽게 잘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장군은 사병들에게 자긍심과 전우애와 마음속 깊이 우러나는 믿음의 정을 주었다. 아마 현충원에 먼저 묻힌 장군의 전우들은 ‘말로만 국가를 위해 산화하자 하고는 우리는 이런 곳에 묻히고 장군들은 우리의 죽음을 밑천으로 부귀를 얻었다’고 원망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혹시 있었을지도 모를 원망을 단숨에 불식시키고 이제 ‘국가를 위해서 죽은 것이 참으로 영광스럽다’고 기뻐하며 만나고 있을 것이다. 이야 말로 “공이 있으면서도 겸손하니, 모두가 승복한다”는 易의 가르침을 실천한 것이고,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연 것이 아니겠는가?

尹相喆 (대유학당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