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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易으로 보는 세상 295​​혜능의 유언, 내 머리를 베어가라

윤상철
2024.08.20·4분 읽기·조회 44

 

건원 윤상철(대유학당 대표)

 


 

못에 물이 없는 것이 곤괘이다. 군자가 이러한 상을 본받아서 목숨을 바치더라도 뜻을 완수한다(곤괘 대상전).

 

중국 불교의 초대 조사는 서역에서 온 달마대사이고, 2조부터 6조까지는 중국 사람이다. 달마대사가 “내가 동쪽으로 중국 땅에 온 것은/ 불법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고자 함이라/ 한 꽃나무에 다섯 잎새가 열리리니/ 열매가 자연히 결실되리라”고 게송을 읊었듯이 2조부터 6조까지 다섯 조사가 나온 것이다.

 

그래서 6대 조사인 혜능대사 이후로는 조사를 상징하는 가사 등 의발을 전수하지 않았다. “내가 이제껏 설법한 것을 지켜서 공부하고, 그 뜻으로 대중에게 설법하라”고만 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부처상을 모시고 예배를 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고승대덕의 유품, 특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예배를 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도 ‘적멸보궁’이라고 한 곳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시고 공양을 드리는 곳이다. 인위적으로 조성한 부처의 상보다는 치아 사리나 두개골 사리 등이 더 진신에 가깝고 영험하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중국에는 등신불이 많다. 고승대덕이 돌아가시면 약품처리를 하며 부패하지 않도록 감실에 모셨다가 향이 섞인 진흙으로 덧칠을 한 뒤에 공양을 하는 것이다. 6조가 멸적했을 때도 그 시신을 서로 모셔가려고 소주, 신주, 광주 등 세 곳의 관료와 제자들이 다투자 향을 피워서 향 연기가 가는 방향으로 결정하자고 해서 조계의 보림사로 모셨다는 육조단경의 기록이 있다.

 

당시 중국의 불교계에서는 ‘법수동류(法水東流: 불법의 물이 동쪽으로 흐른다)’는 설이 은연중 유행하였다. 석가모니불의 불법을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전했듯이 중국의 불법이 신라로 전해진다는 것이다.

 

이 말은 6조의 유언에서도 나타난다. 제자들을 모아놓고 “내가 죽은 뒤 5~6년이 되면 내 머리를 잘라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나를 공양하기 위한 것인데, 류씨와 양씨가 관리가 되어서 잘 처리할 것이다”라고 했고, 또 “내가 간 지 70년이 되면 두 보살이 동방으로부터 올 것이다. 한 사람은 출가한 사람이고 한 사람은 속세 사람인데, 동시에 교화를 일으켜서 나의 종지를 이어가고 절을 세워서 불법을 크게 부흥시킬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6조의 제자들은 스승의 “내 머리를 잘라서 동쪽으로 보내라”는 유언을 “내 머리를 도둑 맞지 않게 잘 보관하라”로 들었는지 스승이 돌아가시자 옻칠을 한 베와 쇠로 만든 잎새를 엮어서 목을 감싼 뒤에 탑 안에 안치했다. 뿐만 아니라 진흙으로 6조의 진신상과 똑같은 모조상을 만들어 놓았다. 6조를 안치한 지 7년 만에 신라 스님 김대비가 2만 냥으로 사람을 사서 6조의 목을 잘라간 사건이 발생하였다.

 

신라에서는 6조의 머리를 가지고 가서 쌍계사를 짓는 등 번창했는데, 중국에서는 6조의 유언대로 소주자사 류무첨과 6조의 제자 영도가 이를 잘 무마했다. 그래서 중국 기록에는 “목이 상했다”고 했고, 한국 기록에는 문수보살의 안내로 절터를 찾아서 지으며 6조를 평장했다고 하였다.

 

그 후 신라에서 도의선사와 진감선사가 6조의 제자 문하로 들어온다. 도의는 스님이었고, 진감은 어부 출신으로 스님이 되고자 들어온 것이다. 이들이 6조의 선종을 배워서 귀국한 뒤에, 6조의 종지를 밝히고 6조 영당과 6조 정상탑을 만들어 6조를 공양하며 크게 발전시킨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분들이야말로 6조가 예언한 ‘두 보살’인 것이다.

 

눈앞에 마음에 드는 제자가 보이지 않을 때는 이렇게 현손(玄孫)에 해당하는 제자를 기다려야 하는 때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역에서는 ‘곤궁할 때는 소중한 머리를 바쳐서라도 뜻을 완수한다’라고 가르친 것이다.